내전의 땅에서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사마에게’

중앙일보

입력 2020.02.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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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촬영 중인 알-카팁 감독.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촬영 중인 알-카팁 감독. [사진 엣나인필름]

“관객들이 우리 중 누구도 시리아를 떠나 난민이 되고 싶어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혁명을 시작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이고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는 이들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영국 망명한 29세 와드 알-카팁
“시리아 참혹한 전쟁범죄 증거 되길”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의 내전 참상을 알린 다큐 ‘사마에게’ 의 감독 와드 알-카팁(29)이 14일 중앙일보의 e메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11년 알레포 대학(마케팅 전공)을 다닐 때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대규모 시위에 합류한 그는 그 이후 의사인 남편 함자와 반군 지역에 남아 정부군의 폭력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찍은 500시간 분량의 영상은 그의 유튜브·페이스북 계정에 더해 2016년 영국 채널4 코너 ‘인사이드 알레포(Inside Aleppo)’ 등에 소개되며 5억뷰를 달성했다. 그해 에미상 등 트로피 24개도 차지했다. 지난달 23일 국내 개봉한 ‘사마에게’는 영국 다큐 제작자 에드워드 왓츠와 이 영상을 토대로 완성한 것이다. 올해 아카데미 장편다큐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 다큐상, 칸영화제 최우수다큐상 등 60개 이상 영화상을 휩쓸었다.

지난 9년간 시리아 정세는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에 러시아 등 강대국이 개입하며 복잡해졌고 참상은 더 심각해졌다. 그는 “시리아 정부는 우리가 목격한 모든 일이 없었다며 부인했다. 오도된 정보로 우린 테러리스트라는 오해를 받았다”며 “우리의 기록은 역사가 될 것이란 믿음”으로 카메라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알-카팁은 “내일이 오면 죽는 사람이 나나 내 딸, 남편이 될 수 있었다. 살아남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에 그토록 가까이서 촬영할 수 있었다” 고 했다.

그는 포탄이 날아드는 내전 한복판에서 보통의 시리아 사람, 여성으로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아이를 낳으며 삶을 이어갔다.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딸 사마.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딸 사마. [사진 엣나인필름]

2016년 2월 7일. 첫 아이 사마(하늘)가 태어났다. “사랑하고 원하는 하늘, 공군도 공습도 없는 깨끗한 하늘. 태양과 구름이 떠 있고 새가 지저귀는 하늘.” 그는 딸의 이름에 희망을 담았다. 그의 다큐는 피로 얼룩진 내전의 땅에서 젊은 어머니가 커가는 딸에게 전하는 편지 식으로 전개된다.

다큐에서 그는 “이 투쟁이 더는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딸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의료진이 다친 산모 몸에서 꺼낸 태아를 살리는 장면도 있었다.
“9개월 차 임신부였다. 부상으로 급하게 꺼낸 아이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꼭 내 아이를 낳는 심정이었다. 아기는 살기 위해 싸웠고 마침내 아기가 눈을 뜬 순간, 나는 남은 인생을 모두 살아갈 만한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어디까지 촬영해야 할지 고민됐을 텐데.
“끔찍해서 차마 담지 못한 것도 많다. 현재 영상은 전부 전쟁범죄 증거를 저장하는 기관에 제출됐다. 언젠가 내 기록물이 수사에 사용돼 알아사드 정권과 러시아 푸틴 정부가 시리아 국민에 한 일이 밝혀지길 바란다.”

그는 2016년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에 강제 추방된 뒤 영국에 망명했다. 추방 당시 배 속에 있던 둘째 타이마까지 온 가족이 함께 시리아 내전에 관심을 촉구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맏딸 사마는 이제 네 살이 됐다.

“아직 300만 명 이상이 시리아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람들이, 각국 정부가 ‘사마에게’를 본다면 지금 일어나는 일의 진실을 알게 될 것이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나는 그 희망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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