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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 다큐 감독 "우리도 난민 되기 원치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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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마에게'에서 2016년 당시 와드 알-카팁 감독의 한 살 박이 딸 사마가 내전으로 파괴된 알레포에서 엄마가 든 카메라를 보고 있다.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에서 2016년 당시 와드 알-카팁 감독의 한 살 박이 딸 사마가 내전으로 파괴된 알레포에서 엄마가 든 카메라를 보고 있다. [사진 엣나인필름]

“관객들이 ‘사마에게’를 통해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우리 중 누구도 시리아를 떠나 난민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요.“

시리아 북부 도시 알레포에서 5년간 내전의 참상을 알려온 다큐멘터리 감독 와드 알-카팁의 말이다. 올해 스물아홉 살로, 딸 둘을 둔 엄마다. 2011년 대학생 신분으로 독재정권에 맞서 시위에 나섰고, 이후 의사인 남편 함자 알-카팁과 함께 반군지역에 남아 어린 아이, 임산부, 병자를 가리지 않는 정부군의 폭격에 카메라를 들었다.

시리아 내전 다룬 다큐 '사마에게' #영국 망명한 와드 알-카팁 감독 #29살 엄마가 어린 딸에 보낸 편지 #칸·영국아카데미 다큐상 휩쓸어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줄래? 

다큐멘터리 '사마에게'로 올해 아카데미 장편다큐상 후보, 지난해 칸영화제 최우수다큐상 등을 받은 (오른쪽부터) 와드 알-카팁 감독과 딸 사마, 남편 함자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로 올해 아카데미 장편다큐상 후보, 지난해 칸영화제 최우수다큐상 등을 받은 (오른쪽부터) 와드 알-카팁 감독과 딸 사마, 남편 함자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2011년부터 찍은 500시간 분량의 영상은 그의 유튜브‧페이스북 계정에 더해 2016년 영국 채널4 코너 ‘인사이드 알레포(Inside Aleppo)’ 등 외신에 공개되며 온라인에서만 5억뷰를 달성했다. 그해 에미상 뉴스 부문 등 24개 트로피를 차지했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다큐 ‘사마에게’는 이런 촬영분을 토대로 완성했다. 그의 가족이 2016년 고향 땅에서 강제 추방돼 영국에 망명한 후 영국 다큐 제작자 에드워드 왓츠와 공동 감독하게 되면서다.

제목의 ‘사마’는 와드 알-카팁 감독이 내전 지역에서 낳은 첫 딸의 이름.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 줄래?” 딸에게 편지하듯 써내려간 그의 내레이션이 전쟁 다큐 그 이상의, 어느 젊은 어머니의 심경으로 담담히 와 닿는다. 올해 아카데미 장편다큐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 다큐상, 칸영화제 최우수다큐상, 핫독스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 관객상 등 전세계 60개 이상 영화상을 휩쓸었다.

테러리스트란 오해 풀기 위해…

“시리아 정부는 시리아에 우리가 목격한 모든 일이 없었다며 부인해왔죠. 사람들, 미디어, 국가를 통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우린 테러리스트라는 오해를 받았고 또 어떤 이들은 우리를 자유민주주의 투사라고 해요. 외부 오해로 인한 혼란 때문에라도 우리의 촬영이 중요했습니다.”  

중앙일보 e-메일 질문에 그가 14일 음성으로 보내온 답변에서 밝힌 이야기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알레포에서 한 해를 보내는 것만큼 힘겨웠다. 나는 모든 것을 계속해서 다시 체험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바랴스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독재정권에 맞서 처음 “혁명에 나선 게” 스물한 살 때. 2011년 3월 학교 담벼락에 민주화 요구 낙서를 적은 10대들이 체포, 고문당한 사건을 도화선으로 알 아사드 정권 퇴진 요구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정부는 무력진압을 가했다.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에서 시리아 반군 지역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의료진들. 맨가운데 아기 사마를 안은 사람이 함자. 동료들 중 일부는 내전 초기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폭격에 당해 세상을 떠났다.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에서 시리아 반군 지역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의료진들. 맨가운데 아기 사마를 안은 사람이 함자. 동료들 중 일부는 내전 초기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폭격에 당해 세상을 떠났다. [사진 엣나인필름]

시리아 정부, 시위대 고문·사살

알레포 대학에서 마케팅을 공부하던 그는 가장 먼저 시위대에 합류해 저격수와 공습, 포탄에 맞섰다. 당시엔 그런 현장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에 종파갈등, 친시리아정부 성향의 러시아 대 미국 등 강대국이 개입하며 혼란은 가중됐다.

와드 알-카팁 감독은 “알 아사드 정권과 정부군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죽였다. 직접 사살했다. 납치해서 죽을 때까지 고문했다”면서 그럼에도 “시리아 정부는 이런 모든 일을 부인했기에 우리가 모든 것을 녹화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처음 촬영할 땐 영화가 될 줄은 몰랐다. 시리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바깥에 알려야 한다는 데 온정신이 쏠렸다”면서 “주변에 전쟁범죄가 벌어져도 사람들은 잘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고 돌이켰다.

IS 폭력, 알 아사드 정권·러시아 때문

다큐가 어떻게 다가가길 바랐나.  

“(시리아) 혁명을 시작한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좋은 삶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란 걸 이해해주길 바랐다. 또 시리아의 가장 큰 문제는 알 아사드 정권이란 것도.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IS) 같은 극단주의자와 이들의 치명적인 폭력과 관련해 벌어진 모든 일이 알 아사드 정권과 러시아 때문이다. 이들이 시리아에서 손을 떼야 해결책과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와드 알-카팁 감독은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독재정권에 맞선 투쟁이 사마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와드 알-카팁 감독은 알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독재정권에 맞선 투쟁이 사마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투쟁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리라 예상했나.  

“몰랐다. 러시아 개입 전까지만 해도 대학 졸업 후 독일에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시리아와 러시아의 협공이 시작됐다. 매일같이 열 명, 50명, 100명으로 늘어나는 시위대를 보며 그들을 내버려두고 떠날 수 없었다. 시리아 혁명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감정, 힘을 느꼈다. 투쟁이 오래 지속됐지만 지치지 않았다.”

남성은 모르는 여성·아이 눈에 비친 내전

그는 영화사와 인터뷰에서 “뉴스를 가득 채우던 죽음과 파괴보단 삶과 인간의 이야기에 끌렸다”면서 “알레포의 가장 보수적인 지역에 사는 여성으로서 남자들은 출입할 수 없는, 도시의 여성들과 아이들의 경험을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와드 알-카팁 감독과 한 살박이 사마. 내전 한복판에서 아이들은 붕괴된 버스를 놀이터삼아, 폭탄이 터졌을 때 해야 할 일들을 전래동화처럼 들으며 자란다. [사진 엣나인필름]

와드 알-카팁 감독과 한 살박이 사마. 내전 한복판에서 아이들은 붕괴된 버스를 놀이터삼아, 폭탄이 터졌을 때 해야 할 일들을 전래동화처럼 들으며 자란다. [사진 엣나인필름]

2016년 2월 7일. 첫 아이 사마가 태어났다. ‘사마’는 하늘이란 뜻. “저희가 사랑하고 원하는 하늘, 공군도 공습도 없는 깨끗한 하늘요. 태양과 구름이 떠있고 새가 지저귀는 하늘요.” 딸의 이름에 희망을 담았다. 카메라를 들 땐 저널리스트지만, 평소엔 그도 ‘딸바보’ 엄마였다.

-전쟁통에 어린 사마를 데리고 다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고 했는데.

“임신했을 땐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무서웠다. 그와 동시에 당시 벌어지던 많은 죽음에 저항하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생명체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 샘솟았다.”

다큐에서 그는 “이 투쟁이 더 이상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 딸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깨닫는다.

부상당한 산모 뱃속 태아 살려낸 장면

부상당한 산모의 배에서 꺼낸 태아를 의료진이 살리려 노력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부상자 중 임신 9개월차 산모가 있었다. 급하게 뱃속에서 꺼낸 아이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꼭 내 아이를 낳는 심정이었다. 아기는 다시 살기 위해 싸웠고 마침내 아기가 눈을 뜬 그 순간, 나는 남은 인생을 모두 살아갈 만한 힘을 얻은 것 같았다.”

유튜브 채널4 뉴스 계정에서 ‘Inside Aleppo: A new life in a deadly city’라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이 영상은 2016년 게재돼 지금껏 124만번 조회됐다.

와드 알-카팁 감독은 내전 중에도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소박한 삶의 행복을 지켜낸다. 이런 일상생활 모습이 전쟁의 참상과 더욱 대비되어 시리아 현실을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 [사진 엣나인필름]

와드 알-카팁 감독은 내전 중에도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소박한 삶의 행복을 지켜낸다. 이런 일상생활 모습이 전쟁의 참상과 더욱 대비되어 시리아 현실을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 [사진 엣나인필름]

폭격으로 인한 참담한 죽음을 담으며 어디까지 촬영해야 할지도 고민됐을 텐데.  

“끔찍해서 차마 담지 못한 사망자도 많다. 오직 당시 벌어지고 있던 전쟁범죄를 기록하려 했다. 현재 이 촬영영상은 전부 전쟁범죄 증거를 저장하는 기관에 제출됐다. 언젠가 내 기록물이 수사에 사용돼 알 아사드 정권과 러시아 푸틴 정부가 시리아 국민들에 한 일이 밝혀지길 바란다.”

자식 잃고 "왜 촬영하냐"던 여인 나중엔   

다큐엔 “왜 촬영하냐”고 큰 소리를 친 여성도 나온다. 그 여인은 7개월여 전 아이를 잃었다. 와드 알-카팁 감독은 “그랬던 그가 나중엔 전 세계가 볼 수 있게 촬영을 계속 해달라고 부탁했다”며 “나는 멈춰선 안 된다, 약해져선 안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알레포에서 누군가를 잃는 모든 순간이 힘겨웠다”면서 그럼에도 떠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돌이켰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와드 알-카팁 감독은 시리아를 떠나 독일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폭압과 그에 맞선 혁명의 물결 속에 자신도 무언가 해야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와드 알-카팁 감독은 시리아를 떠나 독일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폭압과 그에 맞선 혁명의 물결 속에 자신도 무언가 해야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사진 엣나인필름]

“촬영하며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갔어요. 한참이 지나고 깨닫기 시작했죠. 생사를 오가는 전투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을 떠날 수 없단 것을요. 내일이 오면 죽는 사람이 나나 내 딸, 남편이 될 수 있었어요. 말 그대로 살아남을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에 그토록 가까이서 촬영할 수 있었던 거예요.”  

폭탄 터져도 울지 않던 한 살박이 

포위당한 알레포에서 결국 그의 가족과 동료들은 추방당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망명한 영국에서 그는 추방 당시 뱃속에 있던 둘째딸 타이마까지 네 식구와 함께 시리아 내전에 관심을 촉구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맏딸 사마는 이제 네 살이 됐다.

내전 중 태어난 사마는 폭탄이 터져도 울지 않는 아이였다. [사진 엣나인필름]

내전 중 태어난 사마는 폭탄이 터져도 울지 않는 아이였다. [사진 엣나인필름]

지난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는 “사마는 (내전 중) 모든 것을 이해했다. 폭탄 공세에 그애를 찾아보니 매우 고요하게 잠들어있었다”며 “둘째 타이마는 우유 한 병이 떨어져도 우는데, 사마는 높은 침대에서 떨어졌을 때도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애가 무서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아픈 속내를 털어놨다.

여전히 시리아엔 300만명 공포 떨죠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주인공이자 감독 와드 알-카팁이 남편 함자, 두 딸과 망명한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은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다큐멘터리 '사마에게'의 주인공이자 감독 와드 알-카팁이 남편 함자, 두 딸과 망명한 영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은 모습이다. [사진 엣나인필름]

불과 올해 첫날에도 시리아 북서부 반군거점지역에선 정부군 공격으로 민간인이 사망했다. 영화사와 사전 인터뷰에서 와드 알-카팁 감독은 “아직 300만 명 넘는 (시리아) 사람들이 공격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사마에게’를 보고 ‘이 일은 (지나간) 역사다’라고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누구든 이 영화를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인간으로서, 나는 그 희망을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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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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