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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서 싹튼 인간 내면의 공격성 묘사|노벨 문학상을 받은 카밀로 호세 셀라의 작품세계&&독재정권의 비인간성·잔인함 고발|후기엔 대중 취향적 풍자작품에 몰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쁘다. 나와 똑같은 문학적 업적으로 스페인어 권에서 이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 작가가 몇 명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결국 내게 상이 돌아왔다. 어쨌든 즐겁다.』
마드리드 근교의 작은 도시 과달라하라 자택서 금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에 접한 카밀로 호세 셀라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스페인어 권 문학의 부유함을 은연중 내세웠다.
셀라의 이번 수상으로 스페인은 5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내게 됐으며 카를로스후엔테스, 옥타비오 파즈(멕시코), 마리오 바르가스(페루)등 수 년째 수상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작가도 몇 명 있으므로 셀라가 스페인어 권 문학에 대해 자랑할 만도 하다.
장편 10편을 포함, 기행문·시·단편 등 총 70편의 작품을 통해 셀라는「연민을 최대한 억제한 채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인간의 취약성이란 인간 본성의 위악적인 측면은 물론 그것이 제도화된 사회적 폭력을 가리키며 셀라는 스페인내전 및 프랑코의 파시스트정권에 의한 체험에서 그것을 환기시킨다.
내전의 비인간성을 강렬하고 풍부한 문체로 용감하게 폭로, 내전이후 침체에 빠진 스페인문학의 새 길을 연 것이 이번의 영예를 가져다준 것이다.
셀라는 1916년 5월 스페인 계 아버지와 영국계 어머니를 둔 중류가정에서 태어났다. 부계로부터 물려받은 스페인의 귀족풍과·모계로 물려받은 영국계의 해적전통의 용맹이 그의 삶 및 작품세계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도 있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던 셀라는 스페인 내전이 터지자 내전에 참전, 부상했다.
종전 후 새로이 법학을 전공했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문학수업에 할애했다. 셀라는 42년 첫 소설『파스쿠알 두아르테 일가』를 발표, 문단의 호응을 얻자 문학에만 전념하게 됐다.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인『파스쿠알 두아르테 일가』는 한 평범한 농부를 살인마로 돌변케 한 인간 내·외적 조건을 다각도로 파헤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살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그리면서도 공포가 인간내면에 잠재된 공격성을 어떻게 도발하는가를 심리묘사를 통해 파헤치고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되자 스페인문단은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의 독재정권 아래서 시들해진 스페인문학의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작품은 솔직·담대하게 부정적인 면을 묘사한 것이 프랑코 정권의 검열에 걸려 판금까지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스페인내란 참전에서 체험한 셀라의 공포가 이 소설에 나타난 인간 내·외적 공포의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이후 가장 널리 읽힌 소설로 기록되며 셀라를 전후 스페인의 대표적 작가로 끌어올렸다.
스페인의 전후상황 및 거기에 위축된 인간심리를 담으려는 셀라의 작업은『벌집』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후 스페인을 대표하는 갖가지 인간상에 대한 풍자적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벌집』에서 셀라는 군중 속에 파묻혀 들어가는 개성의 혼돈을 묘사함으로써 전체주의의 비인간화를 고발한다.
즉 전체주의 하에서 맥없이 풀려나가는 인간군상의 심리 하나 하나에 현미경을 들이대듯 묘사, 독자들에게 전체주의의 무서움을 잔혹하게 환기시킴으로써 프랑코 정권에 대항한 것이다.
『벌집』역시 검열에 걸려 국내 출간이 어렵게되자 아르헨티나에서 출간됐다.
셀라는 이후에도『풍차방앗간』『성 카밀로의 1936년』등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후기작품들은「끔찍주의」로 불리며 냉혹한 문체로 인간 및 사회를 파헤치는데서 벗어나 스페인어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토속적인 문체로 대중 취향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평을 듣고있다. 특히 68년부터『비밀사전』이란 성에 관한 은어 및 욕설해설집을 비롯, 대중 취향적 시접·기행문 등을 펴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부도 끌어 모았다. 그러나 너무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프랑코 사후 셀라는 77년 스페인 상원의원에 지명돼 78년 스페인 새 헌법의 기초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 스페인 한림원 최 원로회원으로 대우받고 있고 고희를 넘긴 고령임에도『아마단스』(사랑하자)라는 잡지도 발행하고 있으며 필생의 대작도 구상중이다. 이러한 정력적인 활동으로 인해 셀라는 스페인에서는 작품 못지 않게 호색가·미식가·여행가로도 잘 알려져 잇다.
그는 그의 나이 반밖에 안되는 마리나 카스타노와 염문을 뿌리며 곧잘 현지 매스컴에 화제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셀라는 매스컴의 감시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애야말로 끊임없는 상상력의 샘이라며 카스타노를 문학의 동반자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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