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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년 된 ‘따로 또 같이’ 순발력…‘문어발 분권’이 답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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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동물의 지능은 얼마나 될까? 이런 의견이 분분할 때 혜성처럼 나타난 녀석이 있었다.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족집게 예언자’로 이목을 끈 문어 ‘파울’이다. 녀석은 독일팀이 치른 8경기 결과를 모조리 예측해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결과를 모두 맞출 확률은 256분의 1. 문어는 제법 지능이 높은 편이긴 한데, 정말 예측력이 있었던 걸까?

촉수 신경세포 따로 움직여 민첩 #발 8개로 상황 맞게 창의적 대처 #중앙집중 아닌 분산시스템 진화 #우한 시장, 지시만 기다리다 실기 #몽땅 틀어쥐다 때·기회 놓치기도 #구글, 지주사 세워 영토 확장

#영국의 유명한 통계학자인 데이비드 핸드는 고개를 젓는다. 그 정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괜한 어깃장 아닐까 싶은데 다양한 증거를 들이민다. 우리가 풀밭에 가면 찾곤 하는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무려 1만분의 1이다. 이 정도면 가망이 없을 듯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가끔씩 환호성을 지르는 이들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이뿐인가? 벼락에 맞아 사망할 확률은 30만분의 1이나 되는 데도 해마다 2만4000여 명이 목숨을 잃는다. 부상자는 10배나 되고 말이다. 그러니 파울이 맞힌 256분의 1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영국 왕립통계학회장을 지낸 이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 없다.

뜬금없이 문어 얘기를 꺼낸 건, 사실 우리가 진짜 제대로 눈여겨봐야 할 문어의 능력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어를 술안주로 즐겨 먹는 숙회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녀석들의 생존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무려 2억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2억년이라면 수많은 환경변화는 물론 공룡이 사라진 5번째 대멸종을 이기고 살아남았다는 건데, 도대체 어떤 능력 덕분이었을까? 여러 능력이 있지만, 요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생존의 지침이 될 만한 특출한 능력이 하나 있다.

우리들이 맛있게 먹는 녀석들의 촉수(발)에는 하나당 최대 5000만개의 신경세포가 포진해 있다. 그런데 이 신경세포 중 뇌와 연결된 것이 많지 않아, 각 발들은 ‘중앙 뇌’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따로따로 움직인다. 우리처럼 모든 신경세포가 뇌와 연결돼 통제를 받는 게 훨씬 효과적일 텐데, 왜 그러지 않을까?

#우리가 중앙집중시스템의 장점을 선택했다면 녀석들은 분산시스템의 장점을 받아들인 듯하다. 각 발이 따로따로 상황에 대처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긴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녀석들의 이런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인데, 사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앙집중시스템은 대응이 늦다.

자극을 감지한 감각이 중앙에 보고한 후 지시를 기다리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결정적인 타이밍을 놓치는 건 물론, 생사가 좌우될 수도 있다. 순발력과 유연성이 떨어진다. 요즘 전 세계를 떨게 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화’된 것처럼 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얼마 전 우한 시장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베이징의) 허가를 받아야 (폐렴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중앙에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리다 초동대처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문어는 1600여 개의 흡판으로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을 온 몸에 분산, 마치 연방제처럼 ‘따로 또 같이’ 움직인다. 역량을 머리에만 배치하지 않고 온 몸에 배치, 각자 스스로 대처하도록 한다. 독자적이고 창의적으로 움직이는 8개의 발로 놀라울 정도의 순발력과 유연성을 발휘한다.

지금은 바이러스의 예방과 치료에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이번 사태를 키운 이 근원(根源)을 신중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조직들 또한 중앙집중 성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중앙집중식은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했던 팔로어 전략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는 상황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든 걸 틀어쥐려 하기보다 힘을 나누는 게 낫다.

긴급한 일은 일선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게 효과적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이미 분권화된 조직을 통해 ‘문어발 경영’이 한창이다. 구글은 몇년 전 지주회사 알파벳을 설립했는데, 오너의 지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 하고 있는 사업을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념하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분권화를 바탕으로 자율주행차량 같은 사업에 문어발처럼 진출하고 있다.

예전의 ‘문어발 경영’은 덩치와 완력으로 남의 시장을 빼앗는 것이었기에 지탄의 대상이었지만 요즘 문어발 경영은 다르다.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자신의 주력 기술을 확장, 핵심 기술로 승부해 시장을 늘린다. 온라인 도서 판매로 시작한 아마존이 ‘문어발’을 넘어 ‘만물상’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스러운 확장이니 계열사가 늘어도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카카오의 계열사가 92개나 되지만 누구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세상은 환경이 요구하는 것을 갖추는 생명체의 손을 들어준다. 문어발을 술안주로만 먹지 말고 생존의 교훈을 경영에 접목해 볼 때다. 오래오래 살아남고 싶으면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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