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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고릴라도 밤엔 불침번…위기에 ‘낄끼빠빠’ 해야 리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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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호 14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아프리카 서부의 울창한 밀림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다. 숲이 우거져 낮에도 어두컴컴할 정도니 밤에는 말할 것도 없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칠흑 자체다. 이곳에 사는 고릴라들이 해가 지려하면 서둘러 나무 위에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무언가 들이닥치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높은 곳에 안전한 거처를 만든다.

땅바닥서 자며 무리의 안전 지켜 #위기 외면한 라이언킹은 바로 퇴출 #카이사르는 방어선 위태로운 곳에 #눈에 잘 띄는 백마 타고 가서 구해

그런데 예닐곱에서 열 마리 남짓한 무리 중 한 마리는 대체로 나무 밑동 땅바닥에서 잠을 청한다.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 수컷 고릴라다. 왜 가장 높은 우두머리가 안전한 곳을 마다하고 땅바닥에서 잘까? 대장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장은 무리의 암컷들과 짝짓기하는 우선권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지만 이런 특혜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구성원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의무를 다할 때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있을 때가 있다. 어둠뿐이기에 보이는 건 없고 오로지 가까워지는 소리뿐이다. 일정한 속도로 한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건 의도적일 가능성이 크기에 위기다. 이럴 때 무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 쿵쿵 치며 “다가오지 마” 신호

고릴라 삽화

고릴라 삽화

땅바닥에서 자는 대장이 이 정체 모를 소리와 맞선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쿵쿵 두드린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제스처를 실제로 한다. 키는 우리 인간 만하지만 몸무게가 보통 120~130㎏쯤 되는 수컷 고릴라는 가슴이 넓기에 주먹으로 치면 북처럼 큰 소리가 난다. 조용한 숲에서는 1㎞까지 울려 퍼질 정도다. 소리가 클수록 가슴이 크다는 것이고, 가슴이 크다는 건 덩치가 크다는 뜻이니, 가슴을 세게 치면서 ‘나는 덩치가 이렇게 크니, 경고하건대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왜 이런 위험과 맞설까? 구성원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으면 무리가 하나둘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왜 남아있겠는가? 무리가 없는 대장이란 있을 수 없는 법, 대장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자격을 가졌음을 능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사회적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동물의 왕국에서 이런 일은 기본이다. 요즘 다큐멘터리 같은 생생한 화면으로 상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오는 사자 무리의 ‘킹’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자들이 영역을 침범하거나 공격해 왔을 때 앞장 서 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곧 퇴출되고 만다.

사자 삽화

사자 삽화

‘킹’인 수컷들의 덩치가 크기에 곧바로 쫓아낼 수는 없지만, 다른 수컷 사자들이 ‘킹’의 자리를 노리며 도전해 왔을 때 무리의 대부분을 이루는 암컷들은 본 체 만 체 한다. 도와줄 여력이 있어도 모른 척한다. 무리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고 특혜만 누리는 존재가 왜 필요하겠는가?

외부의 공격만이 위기는 아니다. 건기가 되면 먹을 게 귀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버팔로나 코끼리를 사냥해야 하는데, 작은 덩치의 암컷들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럴 때도 보스(들)가 나서 위기를 적극적으로 해결한다. 좀 더 조직력 있게 살아가는 늑대와 리카온(아프리카 들개) 무리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라고 다를까? 로마의 카이사르는 지금의 서유럽인 갈리아 지역에서 예상을 깨고 승승장구했다. 비결 중 하나는 위기 때마다 앞장 서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전투 중 어느 한 쪽이 밀려 방어선이 붕괴되겠다 싶으면 그는 그때마다 백마를 타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얼핏 생각하면 멋진 장면 같지만 사실 이것보다 위험천만한 일이 없다. 붉은 망토를 걸치고 백마를 탄 사령관은 아군은 물론 적군에게도 한눈에 띄기에 좋은 표적이 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기울어져 가는 전황을 순식간에 바꿔 놓곤 했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사령관을 어떻게 화살받이로 만들 수가 있겠는가? 병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고, 그러다 보니 전세를 역전시키며 승리할 수 있었다.

자연에서나 인간 세계에서나 자신이 이끄는 집단이 위기를 맞았을 때, 리더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세 가지 기본 역할이 있다.

안팎으로 흔들릴 때 존재 가치 입증

먼저, 위기(현실)를 인정해야 한다. 위기라는 걸 인정해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최근 각국의 위기 사례를 다룬 책 을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한 말이 있다. “지도자들이 자국의 문제를 정직하게 평가하지 않으면 위기가 악화된다.”

둘째,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알아야 한다. 고릴라와 사자 무리의 대장처럼, 그리고 카이사르처럼 말이다. 심지어 도둑을 이끌 때도 그렇다. 큰 도둑 도척은 도둑의 우두머리가 가져야 할 다섯 가지 도(道)를 말하면서, 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리더라는 존재와 위치는 그 자체가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요즘 흔히 쓰이는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져야 할 때 빠지는 것)’는 옛날부터 리더의 필수 덕목이었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집단과 구성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 한 아이가 물었다. “어떻게 대통령이 되셨어요?” 답변이 케네디다웠다. “위기가 나를 찾아왔거든.” 리더에게는 안팎으로 세상이 흔들릴 때야 말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할 기회다. 위기를 피하기만 해서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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