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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에 위협받는 ‘KAI 훈련기’···10조 딜 뺏긴 건 시작에 불과

중앙일보

입력

세계 고등훈련기 시장에서 미국 보잉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사실상 해당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고등훈련기 T-50을 겨냥한 행보다. 보잉에 밀려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수주전에서 고배를 마신 KAI로서는 더욱 달갑지 않은 상황이 됐다.

보잉 관계자가 지난 12일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자사 고등훈련기인 T-7(A)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잉 관계자가 지난 12일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자사 고등훈련기인 T-7(A)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잉은 지난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싱가포르 에어쇼에서 자사의 고등훈련기 T-7이 향후 수십년간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어떤 장점을 가질 수 있는지 알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대상은 아시아 지역 고객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방산업계에선 보잉이 T-7으로 아시아를 비롯한 고등훈련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T-50의 파이를 잠식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개발 단계인 T-7은 2023년 첫 납품을 시작으로 2034년 정상운용능력 검증을 마칠 계획이다.

보잉 고등훈련기 T-7(A) [사진 보잉]

보잉 고등훈련기 T-7(A) [사진 보잉]

이미 T-7은 T-50의 발목을 한 차례 잡은 적이 있다. 2018년 9월 APT 교체사업에서 KAI-미국 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은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밀려 수주에 실패했다. APT 사업을 염두에 두고 2000년대 초반부터 T-50 개발에 나선 KAI로선 뼈아픈 결과였다. 그동안 미국 수주전을 대비해 아시아 등에서 실력을 쌓아온 터라 충격은 상당했다.

T-50은 2011년 인도네시아 16대 계약을 시작으로 이라크 24대, 필리핀 12대, 태국 12대 등 총 64대를 수주했다. 모두 29억 3000만 달러(약 3조 3000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이를 모두 합쳐도 APT 사업 규모(351대)에 한참 못 미친다. 현재 운용돼 안정성이 검증된 T-50이 아직 개발 중인 T-7에 밀렸다는 사실도 향후 수주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T-50과 T-7의 희비를 엇갈리게 한 건 가격 경쟁력이 우선 꼽힌다. T-50의 대당 가격은 2000만~2500만 달러(230억~300억 원)라고 한다. T-7의 대당 가격은 공개된 바 없지만 대규모 생산을 전제로 최대 T-50의 60% 수준까지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총 351대의 고등훈련기와 46대의 시뮬레이터가 걸린 미 공군 APT 수주전에서 KAI는 163억 달러(약 18조)를 사업 예정가로 예상했지만, 보잉은 92억 달러(약 10조 2000억 원)를 써냈다.

T-7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기체 제작에 3D 프린팅 기술 비중을 늘린 데다 기존 활용되는 부품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T-7의 생산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이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KAI가 자체 개발한 T-50. [사진 KAI]

KAI가 자체 개발한 T-50. [사진 KAI]

가격을 제외한 나머지 제원에선 T-50이 뒤처지지 않는다. T-50의 최대속도는 마하 1.5으로 마하 1.04인 T-7보다 오히려 앞선다. 최대 이륙 중량도 T-50은 12.3t으로 T-7의 5.5t을 웃돈다. 하지만 이들 기체가 어디까지나 훈련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제원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방산업계에선 KAI가 T-50의 파생형 기종 FA-50 등으로 수출 활로를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T-50은 고등훈련뿐만 아니라 공대공 미사일(AIM-9), 공대지 미사일(AGM-65), 유도폭탄 등을 장착할 수 있어 실제 경공격기 임무로도 활용될 수 있다. T-50 기반의 경공격기 FA-50은 이미 2013년 실전 배치됐다. 업계 관계자는 “고등훈련기와 경공격기를 완전히 분리해 운용하기 어려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T-50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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