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억 기부천사 된 ‘남대문 볼펜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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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최근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확산으로 많은 분이 염려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특히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마스크를 사용하고 싶어도 비용 부담으로 못사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분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1억원을 기탁하고자 합니다.”

18년째 이웃 돕는 이남림 할아버지 #8살때 홀로 상경, 장사로 돈 모아 #난치병 어린이 위해 30억 등 쾌척 #이번엔 저소득층 마스크 성금 1억

이남림씨가 1억원을 기부하며 보낸 편지. 이씨는 자신의 얼굴 공개는 고사했다. [사진 여주시]

이남림씨가 1억원을 기부하며 보낸 편지. 이씨는 자신의 얼굴 공개는 고사했다. [사진 여주시]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복지행정과 사무실을 찾은 40대 남성이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와 함께 5000만원짜리 수표 2장을 전달했다. 이 남성은 이남림(73) 씨의 아들 성준씨. 성준씨는 “아버지가 저소득층의 마스크 구매에 도움을 주길 희망한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손편지엔 “모두가 함께 건강하게 잘 살길 바라는 제 작은 뜻으로 전하는 것이니 마스크 품귀현상 등으로 물량 확보가 어렵다면 기탁한 성금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써달라. 취약계층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되도록 해주길 바란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남림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이웃돕기 성금 2억원을 여주시에 기부했다. 개인의 억대 성금 기부는 처음이라 이항진 여주시장이 직접 찾아 감사의 인사를 하겠다고 했으나, 성금을 전한 아들 성준씨는 아버지 뜻이라며 거절했다.

이씨는 2002년부터 기부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언론 보도로 알려진 기부액만 67억원. 지난해 4월엔 강원도 산불 피해 주민 구호에 써달라며 2억원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맡겼다.

그는 2006년과 2007년 KBS 기부 프로그램 ‘사랑의 리퀘스트’에 “돈이 없어 병을 못 고치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며 각각 30억원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이 금액은 그가 사들인 땅이 광교신도시 개발 계획에 포함되며 나라에서 받게 된 토지보상금 중 세금을 뺀 전액이었다고 한다. 2002·2003년엔 태풍 ‘루사’와 ‘매미’ 수재민을 도와달라며 성금 1억원을 각각 내기도 했다.

8세 때 홀로 고향인 전남 함평에서 상경한 이씨는 남대문시장에서 돈을 번 자산가다. 처음엔 볼펜 장사로, 나중에는 안경도매점을 운영해 돈을 모았다고 한다.

이 시장은 “어르신 뜻대로 마스크를 사 취약계층에 전달하고 남으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복지사업에 투입해 나눔의 뜻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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