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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좌대가 점거한 계곡…남양주가 정비 나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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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익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전익진 경인총국장

전익진 경인총국장

지난 수십년간 수도권 시민들은 하천과 계곡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계곡변에 발 담그고 앉아 쉬거나 편안하게 물놀이를 하겠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됐다. 하지만 이제 경기 지역에서는 옛날얘기가 됐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 계곡이 대표적 사례다.

이곳도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50여년 동안 불법 천지였다. 물가 자리에는 평상과 좌대가 뒤덮다시피 해 앉을 자리가 없었다. 모두 음식점과 시설 주인들의 것이었다. 앉아 쉬려면 음식점을 이용하거나, 비싼 자릿세를 내야만 했다.

불법 시설물은 지난해 8월 싹 치워졌다. 제 모습을 드러낸 계곡에는 맑은 계곡수가 흐르고 탁 트인 물가 자리에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사라졌던 피라미도 돌아왔다. 남양주시는 지난해 8월까지 4개 하천과 계곡의 82개 업소가 설치한 불법 시설물 1105개와 2260t의 폐기물을 철거했다. 정비를 마치는 대로 올해 안에 시민 정원식의 공원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이런 변모는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은 “반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불법 점유됐던 하천과 계곡을 시민과 국민에게 돌려줘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은 공직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 생각한다”며 욕먹을 각오하고 칼을 빼 들었다고 한다.

남양주시의 성공 사례는 경기도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해 남양주의 하천 정원화 사업을 경기도 전 시·군에 적용해 올해부터는 경기도 지역 하천과 계곡에서 불법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도록 지시했다.

남양주시의 하천·계곡 담당 공무원은 “불법 시설물 철거 과정에서 ‘밤길 조심하라.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에도 시달렸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하지만 이들을 대화로 설득하고, 자진철거 시 철거지원 등 당근정책도 구사하며 철거를 완료했다”고 전했다.

공무원을 공공 사회의 심부름꾼이란 뜻의 ‘공복(公僕)’으로 일컫는다. 지자체와 담당 공무원이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한다면 곤란하다. 공정한 사회질서를 헤치는 가운데 만연한 불법을 바로 잡는 건 국민이 부여한 공직자들의 책무다. 이번 사례는 민선 지방자치 25년사(史)에서 ‘떼법’과 불법에 흔들리지 않는 지자체의 자세 전환이라는 평가를 할 만하다. 표의 눈치를 보며 불법을 묵인하는 전국 곳곳의 나쁜 사례가 사라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전익진 경인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