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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암=사형선고’ 옛말 … 지금은 환자 10명 중 7명 완치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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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일은 세계 암의 날 암은 국내 사망 원인 1위다. 한 해 약 7만여 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예전엔 암 진단은 곧 사망선고를 뜻했다. 그러나 지금은 예방·진단·치료 기술의 발전으로 암 환자 10명 중 7명이 완치한다. 현대 의학에서 암은 여전히 난치병이긴 해도 더는 불치병은 아니란 얘기다. 국제암예방연합(UICC)이 제정한 세계 암의 날(2월 4일)을 계기로 암 치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암 극복의 의지를 새로 다지는 건 어떨까.

암은 현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질병이다. 지난해 발표된 국가암등록통계(2017)에 따르면 한 해 동안 발생한 암 환자는 23만2255명이다. 한국인이 기대수명(83세)까지 생존했을 때 암에 걸릴 확률은 35.5%에 달한다. 한국인이 가장 취약한 암은 위암이며 대장암, 폐암, 갑상샘암, 유방암, 간암, 전립샘암 순으로 많이 발생한다.

"유전자 검사로 암 예방·진료 #체액으로 간편·신속한 진단 #복강경·로봇으로 정밀 수술"

다행히 생존율은 개선되고 있다. 최근 5년(2013~2017년)간 생존율이 70.4%로 2001~2005년 진단된 암 환자보다 16.3%포인트, 2006~2010년 진단된 암 환자보다 4.9%포인트 향상됐다.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가정의학과) 교수는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70%까지 향상됐다”며 “나머지 30%는 조기 검진과 2차 암 예방, 적극적인 치료, 조기 완화의료로 환자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면서 채워 나가야 한다”고 했다.

암 환자 최근 5년 생존율 70.4%

직장인 김모(41)씨는 평소에 여성 암 발병 걱정을 많이 한다. 난소암으로 사망한 친척이 있는 데다 2년 전 언니마저 유방암 진단을 받아서다. 언니 주치의의 권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결과, 유방암·난소암의 원인 유전자로 알려진 BRCA1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그는 암 예방과 조기 발견을 위해 매년 유방 촬영·초음파 검사를 받고 있으며 산부인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질 초음파검사를 한다.

암은 더 이상 두렵기만 한 질병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암의 3분의 1은 발생 전 예방할 수 있고, 3분의 1은 조기 진단과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며, 3분의 1은 적절한 치료로 질병을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제는 암 발병 우려가 높은 사람을 선별 관리해 발생률 자체를 낮추고 진보한 치료 전략으로 생존율과 삶의 질을 동반 상승시킨다.

암 발생 예측의 일등공신은 유전자 검사다. 기존에는 단일 유전자 검사를 했으나 요즘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검사를 활용한다. 유전체의 염기 서열을 고속으로 분석할 수 있는 최신 기술로, 많은 수의 유전자를 하나의 패널로 구성해 한번에 처리한다. 중앙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혜련 교수는 “NGS검사는 BRCA를 포함한 30여 개의 유전자에 대한 유전성 암 검사를 한번에 할 수 있다”며 “의미 있는 유전자 변이를 발견하면 암 진단·치료에 이용하고 관련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 진단은 기본적으로 조직 검사를 한 뒤 현미경을 통해 암세포를 관찰해 확진한다. 최근엔 첨단 진단 기술인 액체생검으로 좀 더 간편하면서 빠르게 암을 진단한다. 액체생검은 말 그대로 혈액·소변·기관지 세척액 등 환자의 체액을 이용해 암을 진단하는 것이다. 폐암이 대표적이다. 전통적으로 폐암 진단에는 길고 가는 침을 장기 깊숙한 곳에 넣는 조직 검사를 활용했다. 그러나 치료약에 내성이 생기면 새로운 치료제를 쓰기 위해 내성 유전자를 찾는 조직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기존의 검사법은 출혈·기흉 같은 합병증 발생 위험이 있어 환자·의사 모두 꺼린다. 건국대병원 이계영(호흡기·알레르기내과) 정밀의학폐암센터장은 “기관지 폐포 세척액으로 액체생검을 하면 환자의 신체적 고통을 덜고 검사 결과도 하루 만에 나온다”며 “정확도·민감도까지 우수해 개인별 맞춤 치료를 실현할 수 있어 환자들에게 큰 혜택”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의학에서 쓰이는 암 치료법은 수술·방사선요법·항암제다. 멀리 떨어진 장기에 암이 퍼지지 않고 주변 장기에도 영향이 적다면 수술적 절제만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요즘엔 복강경·로봇 수술로 정밀함을 더해 합병증 발생을 줄이고 장기의 기능을 최대한 살린다. 최신 방사선요법인 양성자 치료도 암 치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주변 정상 조직에 노출되는 방사선량을 최소화하면서 종양 부위만 선택적으로 치료한다. 특히 간암·폐암·췌담도암 등 생존율이 낮은 암에서 치료 효과가 우수하다. 대한방사선종양학회지(2018)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양성자 치료를 받은 국내 간암 환자를 3개월간 분석한 결과, 환자의 69.2%에서 종양이 완전히 소멸했고 17.9%는 종양의 크기가 줄었다.

장기 생존 가능성 높인 면역항암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10명당 1명이 암 경험자다.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고령 암 환자 인구가 갈수록 늘어난다. 나이·체력 탓에 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 흔했지만 요즘엔 고령자라도 적극적인 대처로 우수한 치료 성적을 낸다.

71세 이모씨는 3년 전 직장암 2기 진단을 받았다. 관련 진료과 협진을 진행한 결과, 암세포가 산발적으로 퍼져 있어 범위를 줄이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먼저 했다. 8주 뒤 수술로 암을 제거했고 재발을 막고자 항암 치료를 더 했다. 그는 지금껏 항문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합병증이나 재발의 징후 없이 지내고 있다. 국제학술지 ‘외과학연보(2019)’에 실린 연구결과를 보면 3단계 치료(항암·방사선 병용치료→수술→항암 치료)를 받은 국내 직장암 2~3기 환자를 분석했더니 5년 생존율이 60세 이하 67.7%, 70세 이상 65.5%로 엇비슷했다.

최근 암 환자 생존율 향상의 강력한 견인차는 항암제다. 1세대인 화학항암제에서 출발해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표적항암제를 거쳐 억제돼 있던 몸의 면역 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사멸하는 3세대 면역항암제로 진화했다. 특히 면역항암제의 효과는 개개인의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 유무와 상관없다. 다양한 암에서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연세암병원 조병철(종양내과) 폐암센터장은 “면역항암제는 장기 생존의 가능성을 열어 암 환자의 생존율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며 “항암제별 혹은 다른 치료법과의 병용요법을 좀 더 연구하면 말기 암 환자는 더 오래 살고 1~3기 환자는 재발하지 않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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