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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서거 5년뒤 출소, "진심으로 죄송하다"했던 故박연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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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0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15시간에 걸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12월 10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15시간에 걸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31일 별세한 고(故) 박연차 태광실업그룹 회장이 지난 2014년 2월 경기도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만기출소하며 한 말이다. 그는 생전에 탈세·뇌물공여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2008년부터 6년 간 수감생활을 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박연차 게이트’의 장본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2009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미화 500만 달러를 건넸고,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개입이 있다고 판단했다. “권양숙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아이들 집이라도 사줘야 한다’고 말했다”는 박 회장 진술이 핵심 근거였다.

때문에 박 회장은 이후 정치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할 때 소환되는 인물이 됐다. 노 전 대통령 본인뿐 아니라 친노(親盧) 인사를 두루 후원했던 기업가로 여겨지기도 한다. 2009년 당시 박연차 게이트로 기소된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의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를 받았다. 박 회장과 강 회장에게는 줄곧 ‘노무현 후원자’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밤 늦게까지조사를 받은 뒤 청사를 나오고있다. [중앙포토]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밤 늦게까지조사를 받은 뒤 청사를 나오고있다. [중앙포토]

고인은 수감생활 중 모범수로 분류됐다. 형기를 1년여 남긴 2013년 법무부 심사 과정에서 가석방 검토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법무부는 박 회장의 가석방을 최종 단계에서 불허했는데 이 결정을 내린 사람이 현재 자유한국당 대표인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이다. “박 회장 등 사회적으로 이목을 끈 사건의 주요 수형자나 사회지도층 인사,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가석방은 불허했다”는 게 공식 설명이었다.

박 회장은 출소 이후에도 정치적 풍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박 회장에게서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주장이 2016년 언론을 통해 제기되면서 또 한번 뇌물 공여 의혹에 시달렸다. 당시 해당 언론(시사저널)은 “박 회장과 가까운 지인을 비롯한 복수의 익명 관계자” 증언을 토대로 “반 전 총장이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금품을 수수했다”고 보도했다.

이듬해 대선 출마를 준비했던 반 전 총장은 “언론사 형사 고소를 검토하겠다”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당시 민주당은 “반 전 총장이 박연차 리스트 의혹을 직접 해명해야 한다”(고용진 민주당 대변인)고 압박했지만 반 전 총장이 끝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건은 다시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박 회장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 31일 여권에서는 “과거 박연차 게이트는 검찰에 의해 그 실체가 크게 부풀려졌다”(민주당 예비후보)는 반응이 나왔다.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는 이날 “박 회장과 오래 전부터 진짜 친분이 있었던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이 아닌 형 노건평씨였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박연차 게이트로 구속됐던 ‘원조(元祖) 친노’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4·15 총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다고 전날(30일) 발표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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