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천안→아산·진천…정부 느닷없는 변심이 '우한 갈등' 키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천안에서 아산ㆍ진천으로’.

30~31일 전세기로 국내 송환하는 중국 우한 교민의 격리 수용과 관련해 하루 새 결정을 바꾼 정부 행보가 충청 민심을 들썩이게 했다. 대규모 격리 시설 선정 같은 중요 과제를 주민 반발에 따라 오락가락해 불안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이 지난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우한 교민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이 지난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우한 교민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29일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의 경찰 인재개발원에 교민을 나눠 격리 수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세기로 국내 송환하는 우한 교민은 694명이다. 이들은 김포공항을 통해 30~31일 4회에 걸쳐 입국한다. 전세기에는 37.5도 이상 발열과 구토ㆍ기침ㆍ인후통ㆍ호흡 곤란 등 의심 증상자는 탑승할 수 없다.

귀국 교민이 격리될 아산ㆍ진천의 2개 시설은 모두 공무원 전용 교육 시설이며, 교민 간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1인1실 배정이 가능한 곳이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고, 외부 개방을 하지 않는 점도 고려했다.

애초 정부는 우한 교민을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2곳에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본지는 이를 28일 오전 11시 최초 보도했고, 외교부도 이날 오후 4시쯤 천안 격리를 명시한 사전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그러나 30분 뒤 이태호 외교부 2차관 주재 브리핑에선 “민감한 사항이라 현재로선 격리 장소를 밝힐 수 없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외교부 관계자는 “어디 한 군데를 콕 집어 발표하기 난감한 상황이다. 최대한 발표를 미룰 수밖에 없는 측면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정부가 발표를 미룬 이유는 지역 반발 때문이다. 이날 보도 직후 천안 곳곳에 격리 수용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랐다. 총선과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이정만 자유한국당 천안갑 예비후보, 박상돈 자유한국당 천안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 장기수 더불어민주당 천안시장 예비후보도 각각 입장을 냈다. 한결같이 “천안은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충남 출신 여권의 한 유력 인사는 “두 개 시설을 충남(천안)에만 두는 건 부담”이라는 입장을 정부에 전했다고 한다.

정부가 천안을 격리 후보지에서 제외한 변곡점은 이날 오후 6시쯤 박성식 정부합동지원단장이 우정공무원교육원 인근 주민과 면담한 자리였다.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 30여명은 “검토 중이라고 거짓말하지 마라. 천안으로 오면 몸으로 막겠다”며 반발했다. 현장 분위기를 보고받은 행정안전부가 아산ㆍ진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한서 송환될 교민 격리시설 2곳. 그래픽=신재민 기자

우한서 송환될 교민 격리시설 2곳.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부가 원칙 없는 변경을 하자 이번에는 아산ㆍ진천 지역 주민이 들고일어났다. 역시 반대 플래카드가 붙었고,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경찰 인재개발원 앞에는 진입을 막는 트랙터까지 등장했다. 천안 아산경실련은 성명에서 “김포공항에서 가까운 정부 재난대피시설을 활용하라”고 주장했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한탄이 나왔다. 행안부 한 공무원은 “찜찜하다거나 방역망이 뚫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혐오시설’이 아니라면서 주민 반발이 심하니 결정을 바꾸는 아마추어식 업무 추진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 주민들이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을 트랙터로 봉쇄한 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충북 진천 주민들이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을 트랙터로 봉쇄한 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지방분권특별위원장)는 “격리 시설은 주민 입장에선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이슈”라며 “시간적 여유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격리 시설을 먼저 정확하게 밝히고 안전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면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불안감에 근거한 주장에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며 “수용이 끝난 뒤 소독ㆍ방역을 철저히 하면 감염학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