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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는 남북대화|고위당국자 예비회담 계기로 본 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대화 및 교류는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양 문제라는 걸림돌을 뛰어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할 것 같다.
12일 열린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제3차 예비회담은 북한측이 예상대로 문·임 석방을 요구하고 나서 3시간 여의 회담시간을 격렬한 설전으로 일관, 실질토의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끝났다.
북한측 백남준 단장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문·임 석방문제가 회담진행의 전제조건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전제조건이 아닌 본질문제』라고 강조, 오는 11월15일로 예정된 4차 회담에서도 이 문제를 또다시 거론할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9월27일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을 재개하면서 우리측 관계자들은 북한의 문·임 문제 거론 강도로 북측의 대화의지를 측정할 셈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포옹까지 했고 통일논의를 위해 방북한 문·임 문제를 남북회담에서 거론조차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서 한 두 번 언급하는 것은 대화진행을 위한 절차정도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우리측의 자세였다.
그러나 북측이 12일 회담에서 문·임 문제를 우리의 예상보다 세게 들고 나오자 송한호 수석대표는 사전 배포된 기조연설문을 제쳐놓고『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남 선전 선동만 하는 단체냐』『통일문제는 군중집회 식 회의나 통일전선주장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는 등 정면 반박작전을 구사했다.
우리측이 이처럼 정면돌파로 돌아선 것은 12일 오후 이홍구 통일원장관의 기자회견에서 이미 감지할 수 있었다.
이 장관은『남북교류는 적극 추진하겠지만 이것이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라고 못박아 북한의 문·임 문제 거론에는 나름대로 확고한 원칙을 갖고 대응할 뜻을 비쳤다.
양측의 이 같은 기조를 감안할 때 남북회담뿐 아니라 남북 민간교류도 당분간 전망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평양축전을 고비로 우리측인사의 방북신청 러시는 주춤해졌지만 대신 천주교의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방한초청이 잇따르고 있다.
천주교 측이 북한신도 20여명을 초청하려고 정부승인 하에 로마교황청을 통해 초청장을 전달했고 불교 측도 14일 한강 연등 제에 북측신도 30여명을 초청했다.
연·고대 생들은 연고제에 북의 선배동문들을 초청하려했고 원광대에서는 학술회의에 북측 학자 3명을 초청할 계획이다.
요는 우리측은 비정치적 분야의 남북 순수민간교류를 점차 확대시켜 통일로 나아가자는 기능주의적 접근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반면 북측은 민간교류까지도 지난 48년부터 주장해온 남북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최근에는 민족통일협상회의)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키려하는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높이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 손뼉소리가 날리 만무하다.
따라서 제2차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문제는 양측이 모두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어 성사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밖에 앞으로 열릴 남북체육회담(20일)·국회회담예비접촉(25일)등 나머지 남북대화와 민간교류는 상당기간 성사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남북대화는 북한도 중국·소련과 동구권의 변화물결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대세를 지켜보면서 인내를 갖고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북측 백 단장이 12일『북조선은 동구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말은 역설적으로 북한의 대외개방 불가피성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물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인 것 같다.<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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