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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바뀌고 있는가" 한국정치 연 세미나 지상중계|실용주의 부상…걸음마 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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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북한은 경제발전에 있어 사회주의제도의 효율성에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국제경제질서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경제적 번영을 이룩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도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선뜻 개혁·개방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최근 사회주의 사회의 변혁과 더불어 관심이 증대하고 있는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탐색하는 학술세미나가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소장 길승흠 교수) 주최로 11일 동교 문화관에서 열렸다.「북한은 바뀌고 있는가」라는 주제의 이 세미나는 ▲외교(박한식 미 조지아대 교수) ▲정치(양성철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경제(이태욱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문화(권녕민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사회(김영규 국토통일원 연구관)등 5개 분야로 나뉘어 발표에 이어 토론이 진행됐다. 다음은 발표된 5개 논문의 요약.

<편집자주>

<외교> 박한식<미국 조지아대 교수>
북한의 외교정책은 항상 변할 수 있는 정책전략, 또는 전술도구와 비교적 변하지 않는 체제목표의 결합을 토대로 한다.
북한의 불변의 체제목적은 주체이데올로기가 북한체제 내에서 지고의 위치를 유지하는 한 「민족의 재통일」이다.
이 목적에 대한 심정적 결부가 없었던들 경제궁핍과 정치적 억압으로 인한 북한주민의 고통은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조국통일」의 과제는 궁극적으로 북한의 이데올로기와 체제구조가 실현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사실 평양당국은 조선이 2차 대전 이후 일제식민치하로부터 독립을 확보했을 때 오직 반도의 북반부만이 해방되었고, 남반부는 미국의 지배 하로 넘겨졌다고 믿고있다.
결국 북한당국이 80년대에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결코 연방국가의 일원으로 남한에 합법적 정체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체제를 전복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정향은 최근 들어 남한당국이 명백히 사회불안을 극복할 능력이 없어 보임에 따라 한층 더 강화되어 오고있다.
한편 북한은 대체로 과거자립경제에 대한 지나친 주장으로 국제적 시장경제에 가담할 수 없음으로 인해 남한에 경제적으로 훨씬 뒤지게 된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고 있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보다 발전된 산업 시스팀과의 관계로 인해 그 경제가「종속」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문호개방정책은 서방국가들을 다룸에 있어 현실화되어 나갈 것이며 주체의 이념은 그 체제의 단결이 위협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협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평양당국은 남한의 경제성장이 국제적으로 승인되고 있음을 깨닫고 경쟁의 분야를 물질적인 것(예컨대 경제·군사)으로부터 여론을 바꾸어가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그 통일정책과, 더욱이 그 주체이데올로기를 위하여 남한 내에서의 여론의 감정과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한편 초강대국간의 이데올로기적 충돌이 활력을 잃고있는 시점에서 비동맹운동자체는 쇠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비동맹운동과 북한의 이데올로기적 연계는 점차 설득력이 줄어들고 타당성을 잃어갈 것이다.
그러나 비동맹그룹소속 몇몇 국가들이 지난 10년 간 북한으로부터 다량의 무기를 수입, 북한 외화획득의 주 원천이 되어왔음을 고려할 때 이들 국가와의 관계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 양성철<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현재 북한이 당면한 정치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김일성 후계자문제고, 다른 하나는 북한정권의 이념·체제·정책의 변화다.
이들 두 문제는 서로 맞물려 있어 궁극적으로 사람과 자리, 행동과 틀의 문제로 집약된다.
일부 학자들은 현재 김정일이 정무·당정을 거의 떠맡고 김일성은 국빈접대·위기관리만을 담당할 정도로 권력이양이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김정일은 경력과 자질 면에서 김일성에 훨씬 못 미치고, 그의 친위조직도 김일성의「빨치산 동지들」에 비해 충성심과 결집력이 약하다.
김일성 사후 그 격하운동이 필연적인데 김정일은 가장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동안 북한의 대내외 정책이 실패한 책임을 물어 김정일이 희생양이 되는 등 여러 측면에서 후계체제 성공은 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김정일의 사실상 집권이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도 결코「기정사실」은 아니며 아직도 불확실성과 불가측성을 안고 있는「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북한의 정치체제는 최근 몇 가지 특징적인 변화양상을 보이고 있다.
체제 경직성과 관료적 비능률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관리의 지방분권화를 실시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중공업 우선 정책에서 경공업 동시발전 전략으로 변하고 있다. 또 물질적 자극 없는 정신적 자극에 의한 증산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문제해결을 근본적인데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고 비관적이다. 정통 공산주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는 부자 세습체제, 세계의 흐름을 외면한 주체라는 이름의 고립적 대외정책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 북한은 앞으로 여러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경제> 이태욱<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개혁·개방이 고조됨에 따라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북한경제의 개혁·개방은 남북한의 경제교류 및 협력의 가능성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북한경제변화를 전망하는 작업이 시급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대표적 유형인 스탈린 시대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북한의 경우 유일지도 이념인 주체사상을 경제부문에 원용,「경제에서 자립」을 지도지침으로 삼고 있다. 「경제에서 자립」은 향후 북한경제의 성격을 규정짓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정책노선은 북한의 대외거래를 독특한 형태로 발전시켰다. 모든 경제개발계획은 자력갱생노선에 따른 주체적 공업화의 일환으로서 이는 한반도통일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군사력을 증강·유지하는데 그 기본목적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계획이 구조적 불합리와 생산설비 및 기술의 낙후·시장협소 등의 이유로 부진을 면치 못하자 북한당국은 소련 의존정책을 퍼나가면서 동시에 서방과의 자본협력을 적극 모색, 84년 합영법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이념 중심에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실용주의와 전문지식을 갖춘 온건 테크너크랫의 부상으로 북한정부 자체가 현실주의적 합리성을 추구하려는 변화의 조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얼마나 경제개혁자체를 성사시킬지는 미지수라 하더라도 이들이 안정된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한국은 배려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 권녕민<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45년 해방에서 60년대 초반까지 북한의 문학·예술은 해방직후의 혼란과 6·25, 그리고 전후사회복구사업 등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사회주의 이념의 예술적 실천」을 목표로 조직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46년3월)이 문예운동의 방향을 공산당의 정치노선과 연계시키면서 건국사상동원운동을 전개하고 문학·예술을 통한 사회주의 이념의 선전계몽에 앞장섰다.
60년대 이후 북한의 문학·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미학적 요건을 김일성 주체사상에 입각,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주체성과 혁명성이 더욱 고양되는 변모를 보여준다.
북한의 문학·예술이 주체사상의 요구에 따라 그 혁명적 개념을 재정립하게 된 것은「주체의 문예이론」이라는 교조적 강령이 마련되면서부터다. 이는 문학·예술에서 주체확립의 본질적인 내용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그것이 문학· 예술을 시대의 현실적 조건과 문학·예술 자체발전의 요구에 맞게 강조해 나가는 올바른 길임을 밝힌다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주체문예론 도입 후 북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남한문학·예술에 대한 비판은 민족문화에 정통성의 계승문제와 연관된다. 남한의 문학·예술이 미국·일본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에 의해 정치·군사·경제적 예속뿐 아니라 문화예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에는 남한문학·예술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약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는 남한 문학·예술의 제반 경향에 대해「절대적 배제」의 입장에서「상대적 배제」 의 입장으로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이광수·염상섭·김동인·이효석·채만식 등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옛날 태도에서 벗어나 지금은 이들 문학의 성향을 비판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동안 이념대립에 의해 상호 배타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부분적이나마 공유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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