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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이탄희·장진수·노승일…내부고발자 종착지는 금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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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땅콩 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이 22일 4·15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자천타천 총선 출사표 잇따라 #이수진·최기상 전 판사도 거론 #“사법농단 폭로자들의 사법월담”

그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공익 제보자이자 권력의 폭압으로부터 생존한 제게 주어진 숙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정의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지난해 9월부터 정의당 국민의노조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 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비례대표후보 경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 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비례대표후보 경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내부고발자들의 총선 출사표가 줄을 잇고 있다. 박 지부장과 달리 대부분은 거대 양당을 택했고,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일부를 직접 ‘인재’로 영입했다.

이탄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지난 19일 민주당 10호 영입인사가 됐다. 그는 2017년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재직하던 중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계획 등을 폭로해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의 불씨를 댕겼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10호 영입인사'인 이탄희 전 판사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입당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10호 영입인사'인 이탄희 전 판사가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입당식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스1]

이 변호사는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법 농단 1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해용 전 판사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났는데, 제가 그때 화가 좀 많이 나서 결국 (총선 출마로) 마음을 굳히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수진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와 최기상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의 입당도 곧 있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을 고발한 이들이다.

산업재해 공익제보자 이종헌씨는 한국당이 지난 16일 네 번째로 영입한 인사다. 이씨는 2014년 농약·비료제조사 팜한농 구미공장에서 근무하면서 사측의 산업재해 은폐 사실을 신고했다가 사내 불이익을 받았던 인물로, 이후 공익제보자 보호 운동에 몸담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지만, 한국당의 설득 끝에 영입을 수락했다. 한국당은 공익제보자에게 공천 가산점 30%를 부여한다.

자유한국당 4호 영입인사 ‘산업재해 공익신고자’ 이종헌 씨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4호 영입인사 ‘산업재해 공익신고자’ 이종헌 씨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영입인사 환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3일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과천-의왕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도 내부고발로 이름을 알린 인사다. 장 전 보좌관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국무총리실 주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기소된 뒤 2012년 “청와대 지시로 증거를 인멸했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공직을 떠난 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의 총무지원팀장과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지냈다. 그는 출마 회견에서 “국회에 나 같은 공익제보자가 필요하다. 경험을 살려 공무원의 공익제보를 제도화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왼쪽)이 1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사건을 폭로한 장진수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왼쪽)이 1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국회에도 내부고발자 출신 의원이 있다.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당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방해 의혹을 폭로했던 권은희(광주 광산을·재선) 바른미래당 의원이다. 그는 2014년 재보선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소속으로 출마하면서 당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등으로부터 “국회의원 되려고 거짓 폭로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권 의원 지역구에 또 다른 내부고발자가 출마 선언을 했다. 박근혜 정부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일부를 폭로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다. 지난해 12월 18일 무소속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그는 “당선되면 민주당에 입당하겠다”고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내부고발자로 잘 알려진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18일 오후 광주 광산구 우산동 광산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있다. [뉴스1]

최순실 국정농단의 내부고발자로 잘 알려진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18일 오후 광주 광산구 우산동 광산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있다. [뉴스1]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부고발자들의 총선 출마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내부고발의 종착지가 결국 금배지였느냐”는 비판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이탄희 변호사의 입당과 관련, “공익제보를 의원 자리랑 엿 바꿔 먹는 분”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 변호사를 포함한 판사 출신 인사들의 ‘민주당 입당 러시’를 두고는 여권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전직 의원 출신의 한 여권 인사는 “판사를 그만둔 뒤 거의 공백기 없이 곧바로 정치권에 직행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모르겠다”고 했고, 한 법조계 인사는 “다들 한계를 느껴 정치 결심을 했다고들 하는데, 꼭 국회의원이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법농단’ 폭로자들의 ‘사법월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회의원 배지. [중앙포토]

국회의원 배지. [중앙포토]

반면, 내부고발자라는 이유로 현실정치 참여에 제동이 걸려선 안 된다는 반박도 있다.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힘겨운 순간순간 결단하고 고통을 감수해온 분들의 새로운 선택을 도매금으로, 공익제보를 결심한 그때로 소급하여서까지 폄훼하고 조롱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공익제보 활성화가 필요한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듯싶다”고 썼다. 그 역시 ‘도가니 사건’을 폭로한 또 다른 내부고발자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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