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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덜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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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중국 명(明)의 천계제는 목공일이 취미였다. 몸소 톱질과 대패질을 해 정교한 망루와 누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국정이고 자신이고 다 잊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신하들은 1년에 한 번도 황제를 알현하기 어려웠다. 환관 위충현은 그때마다 찬사를 보냈고, 황제는 우쭐해 더욱 목공일에 몰두했다. 위충현은 그럴 때만 중요 국정을 보고했다. 그러면 황제는 짜증을 내며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떠넘겼다. ('권력규칙', 한길사)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권력을 농락한 간신은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 인물이 당(唐) 말 환관 구사량이다. 순종에서 무종까지 20년간 여섯 황제를 모시며 권력을 휘둘렀다. 황제 2명, 후궁 1000명, 재상 4명이 그의 손에 죽었다. 그는 후배 환관들에게 비법을 남겼다. "천자에게 한시라도 쉴 틈을 주지 마라." 끝없이 향락을 제공해 책을 멀리하고 조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와이너와 길버트 헤프터는 '미친 뇌가 나를 움직인다'에서 동물과 같은 본능적.감정적 '원시적 뇌'(변연계)가 이상행동을 충동한다고 했다. 권력욕.영역욕.성욕.애착욕.생존욕 다섯 가지다. 군주의 뇌를 미치게 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은 성욕이었다. 현군(賢君) 당 현종을 죽음으로 몰아간 양귀비나 거짓 봉화로 주(周)를 무너뜨린 포사, 모두 황제를 머저리로 만든 예다.

특이한 건 목적.사명.이데올로기.신념이다. 이성적 뇌(신피질)의 산물이면서도 원시적 뇌처럼 미친 뇌로 만든다. 종교적 근본주의 같은 것이다. 이념의 꼭두각시가 되면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광신적.공격적 방어태세를 보인다. "춤을 추라고 하네/덩더쿵 덩더쿵 덩덩/팔은 내 팔이지만/움직이는 것은/내 뜻이 아니네…"(박정순, '꼭두각시') 돌이켜보면 자기 생각이 아닌 것을 미친 뇌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남사당패의 인형극에서 '대잡이'는 꼭두각시의 목덜미를 잡고 논다. 그래서 '덜미'라고도 한다. 이념으로 무장한 간신이 대잡이가 되면 정말 무섭다.

"북의 선군(先軍)이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준다"는 북측의 황당한 주장도 '미친 뇌'의 산물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주체사상이나 군부에 덜미가 잡혀 있는지 모른다. 더 딱한 건 "북한 인민이 굶어 죽으면 남쪽 정부 책임"이라는 앵벌이 정권을 찬양하는 남쪽의 일부 주사파다. 이 정부도 386의 코드에 덜미가 잡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