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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대한민국남편들아] 햄릿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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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나는 누가 내게 질문하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이런 질문은 질색이다. "뭐 먹을까?" 산다는 것은 곧 선택하는 일이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매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 끝없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인간은 선택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변화해 왔다.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행복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에겐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우유부단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선택장애를 앓고 있다. 내게 선택의 자유는 고통스러운 시험이다. 가령 우리 가족은 가끔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그때 아내는 내게 묻는다. "뭐 먹을까?"

나는 질색한다. "글쎄, 뭘 먹을까?" 나는 뭘 먹을지 몰라 허둥댄다. 일단 식당을 고르는 데 빨라도 십분은 걸린다. 겨우 식당을 정해서 들어간다 해도 메뉴를 앞에 두고 망설이느라 또 십분이 지나간다. 이걸 택하려고 하면 저게 더 나은 것 같고 저걸 고르려고 하면 이게 아쉽다. 특히 패밀리 레스토랑은 나 같은 사람에겐 그야말로 지옥이다.

우유부단도 아내와 연애할 때는 일종의 배려로 받아들여졌다. 자신의 기호나 주장을 밀어붙이지 않고 늘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는 내 태도를 아내는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선택과 결정의 부담을 상대에게 미루는 비겁하고 답답한 행동이라고 아내는 생각한다. 아내는 자기 주장이 없는 우유부단한 남편을 못 견뎌 한다.

"당신은 주관이 없어."

"맞아. 나는 주관이 없는 것 같아. 학교 다닐 때도 주관식 문제에는 답을 쓸 수가 없었어."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답답해. 남자가 매번 뭘 할지 나한테 물어보고. 당신도 주관을 좀 가져봐요."

아내의 소원대로 나는 주관을 갖고 선택이란 걸 해본다. 외식을 하기로 한 어느날.

"오늘 우리 회 먹으러 가자."

아내는 놀란다. 회를 좋아하는 아내는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뜬다. 남편의 새로운 면모에 괄목상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장마철에 회는 무슨 회야. 또 회는 비싸잖아."

기껏 제안한 것이 거절당하자 나는 상처 받는다.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내친 걸음이다.

"날씨도 그렇고 하니 삼계탕은 어때?"

"얼마 전에 닭 칼국수 먹었잖아."

"보리밥은? 먹은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금방 배 꺼진단 말야."

"그럼 설렁탕은, 자장면은, 스파게티는, 낙지볶음은. 대체 먹고 싶은 게 뭐야?"

"왜 소릴 지르고 그래. 상상력 부족한 사람들이 목소리만 높다더니."

"그러게 왜 물어? 결국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갈 걸."

결혼도 하나의 선택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선택장애인 내가 결혼은 어떻게 쉽게 결정했는지 신기하다. 씩씩거리고 있는 내게 아내가 묻는다.

"당신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해?"

나는 누가 내게 질문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라면 괜찮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상상력 부족한 내가."

김상득 듀오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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