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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만 잡아먹는 ‘좀비사업’···그 264곳에 올해도 5조 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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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달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내년도 예산안을 가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달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 내년도 예산안을 가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정부는 매번 예산을 배정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공공사업에 올해도 5조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했다. 대부분 정치권의 지역구 나눠 먹기식 예산인데, 정부 예산 편성과 국회 심의에서 걸러지지 못하는 구조다 보니 수년째 '좀비사업'이 양산되고 있는 셈이다.

통합의학센터, 농업체험관 등 #“정치권 나눠먹기에 애물단지화 #타당성 검증 시스템 만들어야”

19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가 연례적으로 예산 집행이 부진한 264개 사업(지난해 9월말 기준)에 배정한 올해 예산은 전년대비 13% 늘어난 5조1262억원에 달했다. 연례적 집행 부진 사업이란 2018년도 예산 집행률이 70%에 못 미치면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4년 평균 집행률도 70% 미만인 사업을 의미한다. 이들 264개 사업의 지난해 예산액 대비 평균 집행률은 38.8%였다.

연례적 집행 부진 사업 중 올해 예산안 편성 사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연례적 집행 부진 사업 중 올해 예산안 편성 사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예산 증가율 높은 사업 대부분이 SOC 

집행 부진 사업 중 특히 예산 증액 비율이 높은 사업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사업이다. SOC 사업은 내수·고용 등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도 큰 데다 지역 정치인의 주요 민원 사업이다. 예산 집행 저조 사업(264개) 가운데, 예산 증가율 100%가 넘는 사업 총 29개 중 SOC·건설을 수반한 사업은 22개에 달한다.

사업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는데도 올해 예산이 많이 증가한 사업도 상당수 있었다. 국토교통부의 흑산공항 건립 사업(예산 50억원, 증가율 400%)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최근 이용객 예상 수요가 급감해 사업 타당성을 재조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하지만 국토부는 일단 공사비·설계비 명목 등으로 예산부터 증액했다.
군인 전투력 증강을 위한 국방부의 화력장비 사업(425억9100만원, 97%)은 예산 집행률이 2014년 78%에서 2018년 52.4%로 갈수록 줄어 만성 집행 부진 문제를 보였다. 매년 관련 업체들이 사업에 응찰하지 않거나 계약을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 탓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용의약품산업종합지원 사업(235억5000만원, 400%)은 사업 설계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2018년 끝낼 계획이던 사업 설계가 늦어져 올해 막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지만, 농림부는 올해에만 4년 치에 해당하는 사업비 중 국비 예산을 몽땅 편성했다.

이런 사업들은 정부가 과감히 예산 지출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어렵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산 집행률이 떨어지는 사업부터 지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방침이 있지만, 지역구 정치인 숙원 사업인 데다 국회 예산 심의까지 통과한 사업을 정부가 함부로 줄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올해 예산 증가율 100% 넘는 주요 집행 부진 SOC 사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예산 증가율 100% 넘는 주요 집행 부진 SOC 사업.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집행 부진 사업 늘면 경기 부양도 어려워  

전문가들은 사업 준비가 덜 됐거나 이해관계자 설득 난항 등으로 나랏돈을 줘도 못 쓰는 사업이 늘수록 정작 필요한 사업에는 예산이 쓰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기껏 '확장 재정'을 기조로 나랏돈을 풀어도 경기 부양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공공사업 예산을 나눠 먹다 보면 새로운 사업만 늘어 결국 기존 사업조차 진척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외부 전문가가 재정사업의 타당성 조사 보고서를 검증해 정부와 정치권이 재량권을 과도하게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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