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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자금 대출 받아 승용차 구입|농촌도 과소비로"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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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도시 시민들이 과소비 풍조로 치닫고 있는데 농촌이라고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수 없지만 요즘의 농촌을 보면 과소비·겉치레가 도를 지나칠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영농자금 명목으로 빚을 얻어 자가용을 구입하는가 하면 소박하고 뜻 깊어야할 혼례식 혼수에 천만원대가 넘는 비용을 경쟁적으로 들이고 있다.
농촌이 예전에 비해 풍요로워지고 갈 살수 있는 굿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내실을 기해야 함에도 불구, 대도시 과소비를 모방해 휘청거린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잘못된 과소비 풍조가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는 현장들을 살펴본다.
◇자가용 격증=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김 모씨(47)는 지난 3월 친구의 권유로 82년형 포니승용차를 1백60만원에 구입했다.
김씨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채소를 재배, 연간 9백만원 가량의 순소득을 올리고 있어 중고승용차 1대 쫌은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연간운영비가 자동차세·면허세 등 공과금 40만원, 연료비 60만원, 수리비 40만원,차 보유에 따른 기타 잡비 60만여원 등. 2백만원 가량이 들어가 생각보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 쩔쩔맸다. 김씨는 급기야 지난여름 제천에 사는 친척집에 다녀오다 사고까지 내는 바람에 7백만원 가량의 빚까지 지고 말았다.
지난 한햇동안 자동차 증가추세를 보면 대부분의 지방이 최소 20%에서 심한 곳은 35%까지 격증하고 있으며 증가분의 80∼90%가 자가용 승용차다.
큰 도시가 비교적 많은 경남지방의 경우 9월말 현재 자동차수는 16만4천9백8대로 1년 새 34%인 4만1천9백89대나 늘어 전국 최고의 자동차 증가율을 보였다.
이중 자가용은 14만9백47대로 이 기간 동안 39·5%인 3만9천8백72대나 늘었고 전체 차량증가분의 95%나 차지했다.
가장 도세가 약한 제주도도 9월말 자동차등록 대수는 2만9천5백36대로 1년 사이 21%인 6천2백1대가 늘었는데 80%가량이 자가용이다.
◇고가·호화 혼수=요즘 농촌지역 자녀혼수엔 평균1천만원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조금 잘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1천5백만원은 들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새색시가 시댁식구에게 주는 선물(예단)도 요즘은 현금으로 대체돼 2백만원쯤은 내놓아야 사돈지간에 얼굴 붉히는 일이 없다고 추석직후 큰딸을 시집보낸 전북 김제군 김제읍의 장 모씨 (53)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새색시가 준비하는 혼수용품 중 빼놓을 수 없는 장농이 농촌지역에서도 1천만원짜리 까지 심심찮게 거래되고 있다고 대전에서 가구점을 경영하는 이 모씨(38)는 말한다.
또 1백만원이 넘는 서독제 세탁기에 5푼짜리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장만하고 고급시계를 사는 집이 많다고 한다.
◇주택고급·대형화=충북 옥천군에 짓고있는 아파트는 28평에서 32평까지로 분양가격 4천만원을 넘고 있다.
이는 종전의 농촌지역중 대도시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많이 세워지던 아파트가 17평이하였던 것에 비해 큰 차이가 난다.
또 농촌지역에 신축된 주택 역시 도시지역의 단독주택 못지 않게 화려해지고 고급스러운 자재들을 사용해 땅 값을 제외한 평당 건축비만 1백여만원에 이른다.
평수는 23평짜리가 대부분인데 새집에 걸맞게 값비싼 가재도구를 들여놓는 것이 일종의 붐을 이루고있다.
◇유흥업소 급증=강원도 춘성군 사북면 자촌1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그런데도 이 마을에 도시지역에서만 성업중인「룸 카페」가 올해 6월부터 생겨 현재 성업중이다.
20여 평의 농가주택을 개량해 만든 이 술집에서는 양주·맥주 등 고급술을 부근 군부대 군인과 면회 가족들을 상대로 팔기 시작, 요즘은 인근 지역 주민들이 막걸리·소줏잔 대신 양줏잔을 기울이게 되는 계기가 됐다.
특용작물의 재배기술 발달로 농촌지역에 재래의 쌀·보리 등 마작 중심농이 사라지고 채소·과일 등 값비싼 작물재배가 늘어난 후 현금유입이 많아지면서 가장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각종 오락·유흥전문업소들.
광양제철소 가동 후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던 광양지방은 호텔·술집 등 숙박접객업소가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지난 한햇사이 광양지방에서는 76개의 호텔·술집이 새로 생겨 현재 일반호텔3개, 여관 31개, 카페나 대중음식점 3백60개 등 자그마치 6백70개 업소가 밤마다 흥청거리고 있다.
◇놀이·여행만연=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두드러진 경향중의 하나가 여행이나 각종 놀이모임의 급증현상.
요즘 농촌이나 어촌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2∼3개의 각종 계모임에 가입, 봄·가을 행락철이면 곳곳의 명승지를 찾는 경우도 있다.
해외여행도 예외는 아니어서 제주도의 경우 9월말 현재 여권발급 건수는 1만9천2백15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만7백38건보다 무려 79%나 격증했다.
여행국도 일본위주에서 벗어나 대만·싱가포르 등 동남아지역으로 넓어졌으며 이들 지역의 관광객은 지난해에 비해 3∼4배나 늘어났다.
◇문제점 및 대책=외지가 지적했듯 작금의 한국사회에 나타난 지나친 소비풍조는 곳곳에서 많은 부작용을 남고 있다.
더구나 농어촌 지역이 도시지역 못지 않은 소비풍조에 물드는 것은 한국사회 전래의 기본가치마저 잃을 염려가 있다.
대다수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이며 고향인 농어촌마저 물질만능의 도시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과소비·향락문화로 물든다면 우리의 참모습은 설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강원도는 농어촌지역의 과소비 풍조를 억제하기 위해 1년 전부터 특수시책으로 농어촌 잘살기 운동을 전개, 각종 홍보책자 등을 발간해 과소비 억제를 계몽하는 한편 지역·마을단위로 행정기관의 강이나 저명인사들의 강연회·간담회 등을 벌이고 있다. 지방단위로 지역실정과 주민들의 기호에 맞는 사업들을 개발, 주민들의 여가 등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인 것이다.【지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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