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운기에 삽 대신 카메라”…‘농튜브’ 연 매출 8000만원 껑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유튜브 수익 월 480만원…팬 등장해 인증샷 요청

손보달 솔바위농원 대표가 지난 10일 경기도 평택 농원에서 부인과 함께 상추 등 채소를 수확하며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손보달 솔바위농원 대표가 지난 10일 경기도 평택 농원에서 부인과 함께 상추 등 채소를 수확하며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쌈채소 잘 따는 방법을 알아볼까요.”
지난 10일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에서 만난 농민 손보달(55)씨는 카메라 앞에서도 구수한 입담을 뽐냈다. 귀농 10년 차인 손씨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허름한 옷, 투박한 손만 보면 영락없는 농부였다. 하지만 아내 김현주(52)씨가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고 촬영을 시작하자 유명 방송인 못지않은 언변을 쏟아냈다.

액션캠·삼각대·무선마이크 촬영 장비 무장 #농사 노하우·먹방 등 일기 쓰듯 친밀감 높여 #농튜버 "농산물 생산과정 신뢰도 더 높아져" #우후죽순 개설 농튜브, 검증 장치 필요성도

“이건 청상추 같지만 생채에요. 줄기 밑을 꽉 잡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잘 따집니다.” “이번엔 적겨자. 매운맛 좋아하시는 분들 삼겹살 드실때 곁들여 주시면 좋습니다.” 손씨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촬영을 했다. 손씨가 설명을 하면 아내 김씨가 질문 등 추임새를 넣는 형태다. 적기에 모종을 심고 관리하는 방법 등 농사 정보를 공유하고,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일기처럼 소개하는 식이다. 촬영을 마치면 동영상 편집 애플리케이션으로 자막을 넣어 유튜브에 곧바로 게시한다. 촬영부터 게시까지 약 1시간이 걸린다.

손씨 부부는 지난해 4월부터 유튜브 채널 ‘솔바위농원TV’를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게시한 동영상은 311개, 누적 조회 수는 865만회에 달한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유튜브 운영 9개월 만에 구독자가 6만7000여 명으로 늘었다.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은 71만명이 본 ‘페트병으로 고추 삭혀서 먹는법’이다. 동영상 광고료 등 수익으로 매월 470만~480만원을 번다. 쌈채소 매출은 2018년 4억원에서 지난해 4억8000만원으로 약 20% 늘었다. 손씨는 “구독자들 사이에선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기가 많다. 팬들이 농장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요청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은 유튜브로 나타났다. [사진 와이즈앱]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동영상 애플리케이션은 유튜브로 나타났다. [사진 와이즈앱]

“내가 쓰는 농기구는 인싸템”…농튜버 수확 농산물 완판 

농사를 지으며 방송을 하는 ‘농튜브(농민+유튜브)’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동영상 기반 디지털 플랫폼인 유튜브를 활용한 1인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이들은 농촌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농산물을 홍보하고 광고료 수익을 얻는 효과를 보고 있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인 녹스인플루언서에 따르면 솔바위농원TV 외에 ‘태웅이네(구독자 7만7000여명)’, ‘날라리농부(4만7000여명)’, ‘청도달콤한농장(4만7500여명)’ 등이 유명 농튜브로 활동 중이다. 농사 노하우와 귀농을 주제로 채널을 개설한 농튜브도 수십여 개에 달한다.

경북 청도군 매전면에서 감·복숭아·자두·복분자 등을 재배하는 농민 박광묵(38)씨는 농촌계의 ‘인플루언서(influencer)’로 통한다. 박씨는 ‘청도달콤한농장’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구독자는 10일 현재 4만7400명. 평균 영상 1개당 조회 수는 1만 건(최대 조회 수는 10만건) 정도다. 그는 “3년간 농촌 생활을 영상 일기처럼 거의 매일 유튜브에 올리자, 어느새 농튜버가 돼 있더라”고 했다.

그는 농사일을 나갈 때 경운기나 트럭에 농기구 이외에 액션캠·삼각대·무선마이크 같은 촬영 장비를 싣고 간다. 유튜브 영상 주제가 농사짓는 법, 농촌 먹방 등 농촌 일상이어서다. 박씨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밭에 거름을 주다가도, 감나무에 농약을 치다가도, 가족들과 김밥을 먹으면서도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한다”며 “그런 농촌 생활 영상을 모아 저녁에 편집 작업을 해서 거의 매일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다”고 했다. 영상 장비를 늘 챙겨 다니는 이유다.

스마트폰을 촬영 카메라로 쓰는 농튜브 박광묵씨. 경북 청도군 자신의 농장에서 유튜브 촬영에 대해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윤호 기자

스마트폰을 촬영 카메라로 쓰는 농튜브 박광묵씨. 경북 청도군 자신의 농장에서 유튜브 촬영에 대해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윤호 기자

박씨는 연간 감 1500박스(1박스 20㎏)를 출하한다. 이외에 복숭아·자두·마늘·고추 같은 작물도 수시로 재배해 낸다. 유튜브로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그가 수확한 과일 등 농산물은 수확하는 그대로 모두 팔려나간다. 박씨가 농사를 지을 때 신는 장화, 사용하는 삽 같은 농기구, 그가 사용하는 경운기 타이어 같은 것도 다른 농민들이 곧잘 보고 따라 산다. 박씨는 “부끄러움만 없애면 어떤 농민들도 할 수 있는 게 유튜브다. 자연스럽게 홍보가 이뤄져, 농가 수익 창출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많은 농민이 도전했으면 한다”고 했다.

동영상 교육에 카메라 지원…농튜브 키우는 자치단체 

농튜브가 늘고 있는 이유는 유튜브의 영향력과 관계가 깊다. 안기홍 흙살림푸드 직거래사업부 차장은 “1~2년 전만 해도 블로그와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직거래 농민들의 주된 마케팅 도구였다면 최근엔 스크롤 없이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영상 마케팅이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주 농부인푸드 대표가 9일 충북 진천 푸드 사무실에서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현주 농부인푸드 대표가 9일 충북 진천 푸드 사무실에서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일선 자치단체는 농튜버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농업기술센터를 중심으로 동영상 촬영과 편집 기술, 온라인 마케팅 교육과정을 개설해 유튜브 채널 개설을 돕고 있다. 경남 산청군의 농민 20여명은 지난해 7월부터 22회에 걸쳐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교육’을 받고 유튜브 채널 ‘산청농부들’을 시작했다. 충북농업기술원은 농가 4곳을 선정해 유튜브를 활용한 수익창출 방법과 동영상 제작을 알려줬다. 교육 대상자에게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마이크와 조명, 카메라도 지원했다. 3주간의 농튜버 교육을 받고 올 초 ‘농부인TV’를 개설한 김현주 농부인푸드 대표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이더라도 소비자나 납품업체를 이해시키려면 장시간 설득이 필요했다”며 “유튜브를 통해 생산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니 생산지를 직접 보지 않고도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농튜브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은자 농촌진흥청 농업인교육팀장은 “유튜브에 게시된 농사법이 제대로 된 것인지, 허위 정보를 통해 농산물을 홍보하는지 시청자가 일일이 구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농업의 경우 먹거리와 직결되는 콘텐트인 만큼 검증된 유튜버를 걸러주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평택·청도=최종권·김윤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