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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78%는 죽쒔는데···삼성전자 '주식 쪼개기 저주' 풀렸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6일 삼성전자 주가는 6만700원으로 마감해 종가 기준 최고가를 경신했다. [연합뉴스]

16일 삼성전자 주가는 6만700원으로 마감해 종가 기준 최고가를 경신했다. [연합뉴스]

"액면분할의 저주가 풀렸네요." "드디어 주식 분할 효과를 보나요?"

최근 각종 포털 사이트의 삼성전자 주식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액면분할 이력이 있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자 '주식 쪼개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2018년 5월 액면분할 후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다 지난해 12월부터 강세를 보였고, 새해 들어 최고가를 잇달아 갈아치웠다. 16일엔 전날보다 2.88% 오른 6만700원으로 마감해 사상 처음으로 6만원(종가 기준)을 넘어섰다. 액면분할 직전 주가(분할 기준 5만3000원)보다 14.5% 높은 수치다.

주식 액면분할은 주식의 액면가를 일정 비율로 나눠 증자 없이 주식 수를 늘리는 것을 말한다. 5000원짜리 한 주를 500원짜리 10주로 나누는 식으로, 주식 하나를 여러 개로 쪼개는 거다. 주식 한 주당 가격이 높아 거래가 부진할 때 주로 사용된다. 통상 액면분할을 주가에 긍정적 요소로 본다. 주가가 싸다고 느낀 투자자들이 소액 매매에 나설 가능성이 커서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 공식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 액면분할 결정이 공시된 뒤 주가가 '반짝' 오르는 경우는 있지만, 정작 변경 상장 이후엔 하락하는 사례가 많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 액면분할을 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감자 종목 제외) 23곳 중 18곳(78%)은 주식을 쪼개기 전보다 주가(15일 기준)가 내렸다. 특히 알루미늄 합금 제조업체인 삼보산업은 지난해 5월 액면분할을 한 뒤 주가가 97% 하락했다. 주당 100만원이 넘는 '황제주'의 성적표도 신통찮았다. 10분의 1 비율로 주식을 쪼갠 롯데칠성 주가는 액면분할 전보다 30% 떨어진 상태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액면분할의 저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2019년 액면분할한 기업의 주가 변동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19년 액면분할한 기업의 주가 변동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작년 액면분할 기업 78%는 주가 하락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액면분할 영향이라기보단 실적 부진과 업황 둔화, 어두운 시장 상황 탓에 주가가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액면분할 자체가 기업 실적이나 주주의 지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만큼 주가에 직접적인 호재나 악재는 아니라는 얘기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액면분할 후 주가가 1년 넘게 4만원대 '박스권'에서 움직인 것도, 최근 오르는 것도 모두 반도체 업황과 실적 전망이 반영됐기 때문이란 평가가 많다.

그런데도 액면분할을 실시하는 기업은 꾸준히 나온다. 남영비비안과 메디파트너생명공학은 이미 주식 분할을 결의하고 다음 달 중 변경 상장을 예고한 상태다. 고가주도 액면분할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현재 주당 50만원 넘는 종목은 LG생활건강·태광산업·영풍·엔씨소프트·오뚜기 등 5개다.

전문가들은 액면분할 한 주식이 싸 보인다고 무턱대고 투자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액면분할이 거래량을 늘려 주가를 올릴 가능성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상관관계가 없어 상승세가 계속될 순 없다"고 말했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결국 주가를 결정짓는 것은 업황과 실적"이라고 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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