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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금감원, 라임펀드 상각 요구"…판매사들은 반대 읍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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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일회계법인 평가(밸류에이션)에 따라 상각 처리하라"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말이다. 환매중단 사태를 맞은 '라임펀드'에 대해 금감원이 '상각(대손상각)'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그간 라임자산운용과 16개 판매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꾸준히 이를 요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상각은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할 때 이를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가 채권을 상각 처리하면 이는 곧 펀드 가입자들의 손실로 이어진다. 문제가 발생한 1조6679억원 규모 라임펀드에는 상장사를 포함한 여러 법인과 개인들이 가입했다.

16개 판매사들 대부분은 상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펀드 가입자인 고객의 손실을 손쉽게 결정할 수 없어서다. 대신 어떻게든 채무자(펀드의 투자기업)로부터 자금을 회수해 고객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16개 판매사들은 지난 15일까지 환매협의회 간사인 우리은행 측에 '지금 상각하면 안 되는 이유'를 담은 문서를 전달했다. 우리은행 측은 이를 취합하고 정리해 조만간 금감원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는 경고가 아닌 읍소의 형태를 띤다.

"똑같은 A기업, 라임펀드서만 상각할 수 있나"

우리은행 측은 판매사들의 여러 입장을 취합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중에서도 주된 공통 의견은 라임펀드의 특정 자산(투자 기업) A를 금감원 요구에 따라 무작정 상각 처리할 경우, 똑같이 A에 투자한 다른 펀드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라임운용 아닌 타 운용사는 저마다의 집합투자재산평가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A의 가치를 비교적 일관되게 평가할 것이다. 타 운용사 펀드의 A가 100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라임펀드의 A만 50만큼을 상각 처리해 50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면 라임펀드 투자자들이 이를 수용할 수 있겠냐는 논리다.

판매사B 관계자는 "A라는 채권이 라임펀드에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제로(0) 평가를 받게 된다면 다른 펀드에서 A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아는 라임펀드 투자자 중 어느 누가 그걸 용납하겠나"라며 "최소한 다른 펀드에서 평가받는 것만큼은 라임펀드에서도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일회계법인 평가, 현실적으로 신뢰 어려워"

상각 처리의 평가 기준을 신뢰할 수 있겠냐는 문제도 공통으로 제기된 의문이다. 금감원은 '믿을 수 있는' 삼일회계법인이 지난해 11월부터 라임펀드 채권에 대해 진행하고 있는 실사 결과를 기다렸다가, 이후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가치평가(밸류에이션)를 받고 그 결과에 따른 상각을 수용하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삼일회계법인의 밸류에이션이 정말 믿을 만 하냐는 점이다. 삼일회계법인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다. 주어진 실사 및 가치평가 기간이 너무 짧은 데 반해 대상 자산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판매사C 관계자는 "라임펀드 기초자산(기업)이 90개에 가까운데 삼일회계법인이 두어달만에 이 많은 기업은 정확하게 밸류에이션할 수 있겠냐는 데 대해 대부분 의문을 제기한다"라며 "회계사가 단순히 회사와 한두 번 미팅하고 재무제표를 조금 살펴보는 것만으론 산업 전반과 회사의 히스토리까지 담은 정확한 밸류에이션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판매사D 관계자도 "지난주에 삼일회계법인에서 라임펀드 자산을 회수 가능성에 따라 일단 A, B, C 등 등급으로 분류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회수 가능성이 가장 낮은 C등급으로 평가된 자산에서 조기상환이 이뤄졌다"며 "회계법인 입장에서도 급하게 내린 밸류에이션 결과를 상각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대해 굉장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지난해 10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펀드 환매 연기 사태를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상각 때 채무자 모럴헤저드도 문제"

채무자들의 모럴헤저드(도덕해이)도 판매사들이 꼽은 상각의 반대 이유로 거론된다. 애당초 지난해 11월 라임과 판매사들이 삼일회계법인에 맡긴 라임펀드 실사 목적은 '밸류에이션'이 아닌 펀드 투자 자산 실체 확인 및 상환 가능성에 따른 등급 분류 정도였다. 만기가 돌아오지도 않은 채권을 무리해서 보수적으로 평가하게 되면, 이를 오해한 채무자들이 남은 채무 변제를 더 게을리해 자산가치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판매사D 관계자는 "당초 실사 목적은 자산을 등급별로 나눈 뒤 이미 부도 가능성이 높은 자산은 상각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자산은 만기가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조기 상환하던지 추가적인 보완조치를 해서 회수를 극대화하는 것이었다"며 "밸류에이션을 진행해 먼저 상각을 하게 되면 차주 입장에선 돈을 안 갚아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어 모럴헤저드를 조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판매사B 관계자도 "지금은 정확한 실사를 통해 펀드가 보유한 자산이 실제 얼만큼인지를 외부 평가기관에 의해 검증받고 그 검증이 맞는지를 또 한 번 검증해서 펀드의 가치를 산정한 뒤에 회수할 수 있는 자산과 회수할 수 없는 자산을 분류하는 게 먼저"라며 "상각을 할지 말지는 그 이후에 논의가 돼야지 금감원이 얘기하는 것처럼 '무조건 상각'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상각 요구는 책임 피하려는 것"

손쉽게 제기할 수 있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집요하게 상각을 요구하는 데 대해 판매사들은 금감원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상각을 서두르면 손실 책임을 라임운용과 판매사들에 돌려놓을 수 있고, 금감원은 이 문제에서 손을 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판매사B 관계자는 "무리하게 상각을 추진하는 건 결국 책임 회피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며 "지금 상각을 해서 자산가치를 0으로 만들어두면 나중에 채권 추심을 통해 회수를 할 때마다 자산가치가 플러스(+) 되기 때문에 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판매사E 관계자는 "상각의 의미를 따져보면 금감원은 책임에서 빠지는 한편, 손실은 (투자자와 판매사 간) 분쟁조정위원회로 끌고 가서 (금감원에 대한) 시장 비판을 잠재우겠다는 것 아니겠나"라며 "결국 비판의 시선을 판매사에 돌리려는 수순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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