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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번엔 메그시트…해리 부부 독립선언, 문제는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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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9월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는 홈커밍 센터를 방문한 해리 왕손 부부.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는 홈커밍 센터를 방문한 해리 왕손 부부. [EPA=연합뉴스]

“브렉시트가 메그시트로 대체됐다.”

“마클 왕손비가 주도한 반란” 분석 #여왕 “새로운 삶 지지” 독립 수용 #왕손들 생활비 330억 세금서 충당 #독립 땐 영국 세금에 기댈 수 없어 #거주지 캐나다…총독 임명설 돌아 #‘서식스 로열’ 상표권 등록 신청도

영국 언론은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비가 지난 8일 고위 왕실 구성원(senior royal family)에서 물러나고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처럼 올해 메그시트(Megxit·Meghan과 Exit의 합성어로 메건의 왕실 독립 선언)가 영국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는 의미다.

외신이 이번 사건을 메그시트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독립 선언이 마클의 반란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마클은 해리 왕손과의 결혼으로 영국 왕실에 발을 들인 날부터 독립을 선언한 오늘까지 끊임없이 영국 언론의 공격을 받았다.

프랑스24 등 유럽 언론은 메그시트의 원인으로 마클에 대한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의 공격을 꼽았다. 아프리카계 혼혈 미국인인 마클은 해리 왕손과 결혼 당시 두 살 연상에 이혼 경력까지 있었다. 혼혈 신부를 영국 왕실에 들이는 일 자체가 드문 데다, 마클이 친아버지의 결혼식 참석 문제로 가족 불화까지 드러나며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영국 언론 지속적으로 마클 공격  

영국 왕실의 금기를 한 번에 깨뜨린 마클에 대한 타블로이드 신문의 공격은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 특히 마클이 아들 아치를 출산한 뒤, 관례를 깨고 로열 베이비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공격에 기름을 부었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과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도 출산 직후 병원 앞에서 국민에게 로열 베이비의 탄생을 알리며 아이를 공개했는데, 마클이 처음으로 이를 거부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세금으로 모든 특권을 누리면서 의무는 피하려 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10월 마클이 아버지 토머스 마클에게 보낸 편지 원문과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등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보도되면서 해리 왕손 부부는 사생활 침해 고통을 호소했다. 해리 왕손은 “나는 어머니(다이애나빈)를 잃었고 이제 내 아내가 동일한 강력한 힘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본다”며 해당 신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독립 선언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해리 왕손은 왕위 계승 서열 6위로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94세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건재해 72세에도 왕자 신분인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친형 윌리엄(38) 왕세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적 독립이다. 프랑스24는 “영국 국민이 독립을 선언한 이들 부부에게 세금이 나가는 것을 허락할 리 만무하다”고 전했다. 해리 왕손 부부는 지금까지 영국 공적 자금으로 생활해 왔다. BBC는 지난해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 부부가 2160만 파운드(약 330억원)를 썼다고 전했다. 부부는 거주지 프로그모어 코티지 개조 공사에만 약 40억원을 들였다고 한다.

지난 9일 영국 런던 마담투소박물관에 전시된 영국 왕실 가족의 밀랍 인형. 당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왼편에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비 부부의 인형도 있었으나 하루 전 이들 부부의 왕실 독립 선언 이후 부부의 인형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 영국 런던 마담투소박물관에 전시된 영국 왕실 가족의 밀랍 인형. 당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왼편에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비 부부의 인형도 있었으나 하루 전 이들 부부의 왕실 독립 선언 이후 부부의 인형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AP=연합뉴스]

해리 왕손 부부는 영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생활하고 자선단체를 설립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돈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부는 독립 발표에 앞서 자신들의 공식 호칭(서식스 공작, 공작 부인)이 들어가는 ‘서식스 로열’의 브랜드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대리인을 통해 영국 상표권을 확보한 데 이어 지난달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유럽연합(EU)·미국·캐나다·호주에서 적용되는 ‘서식스 로열’ 국제 상표권 등록을 신청했다. 서식스 로열 브랜드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외신은 전했다. 다수의 영국인은 해리 왕손 부부가 왕실의 의무와 책임은 거부해 놓고, 왕실 일원에게 부여되는 ‘서식스 로열’ 브랜드로 돈을 벌어들일 경우 용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북미 거주지로 캐나다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리 왕손의 캐나다 총독 임명설도 제기되고 있다. 캐나다는 영국과 옛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주축이 된 영연방 회원국 중 하나다. 총독은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 중 현재 영국 연방에 남아 있는 국가들에서 영국 여왕을 대신하는 명예직이다. 캐나다 총독의 경우 내각 요청으로 영국 여왕이 임명하며 임기는 통상 5년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 61%가 해리 왕손이 캐나다 총독을 맡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마클도 미국 법정 드라마 ‘슈트’ 촬영 시 몇 년간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캐나다에서 휴가를 보냈으며, 마클은 현재 아들 아치와 유모 등과 함께 캐나다에 머무르고 있다.

분노한 여왕 긴급회의 뒤 지지 밝혀

해리 왕손 부부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게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분노했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여왕은 이들 부부의 폭탄선언을 논의하기 위해 13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노퍽주(州) 샌드링엄 왕실 별장에서 열린 회의에는 여왕과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 해리 왕손 등이 참석했다.

여왕은 회의 후 성명에서 “내 가족과 나는, 젊은 가족으로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해리와 메건의 바람을 전적으로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리 왕손 부부의 독립 희망을 수용한 것이다. 여왕은 해리 왕손 부부를 왕실 공식 칭호인 서식스 공작과 서식스 공작부인이 아닌, “내 손자와 그의 가족” “해리와 메건”으로 불렀다. AP통신은 “실용적인 여왕이 군주제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논의를 중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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