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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객기 피격설 강력 부인…한 발 물러서 “美 보잉사 조사 참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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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항공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현장을 정리하고있다. [IRN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항공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현장을 정리하고있다. [IRNA=연합뉴스]

지난 8일 발생한 우크라이나항공(UIA) 소속 보잉 737-800 여객기 추락 사고를 자체 조사 중인 이란이 미국 기업인 보잉을 조사에 참여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는 “보잉사나 미국에 (사고기의) 블랙박스를 넘기지 않겠다”던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여객기 추락 사고를 국제적 기준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규범에 따라 조사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와 제조사 보잉사도 조사에 초청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고로 자국민이 사망한 국가가 전문가를 이란으로 보낸다면 환영한다”라고도 덧붙였다. 탑승자 176명이 모두 사망한 이번 사고의 탑승자 국적은 이란인 82명, 캐나다인 63명, 우크라이나인 11명(승무원 9명 포함), 스웨덴인 10명, 아프가니스탄인 4명, 독일인 3명, 영국인 3명 등이다.

지난 7일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지난 7일 추락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그래픽=신재민 기자

알리 아베드자데 이란 민간항공청장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사고기는 미사일에 격추되지 않았다. 이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박스 안에 있는 정보는 항공당국이 공식 입장을 내는 데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며 "이 정보가 나오기 전의 예단은 전문가의 의견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아베드자데 청장은 전날 이란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목격자의 증언과 파편으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사고기는 이륙 3분 뒤 불이 붙었다"면서 "조종사가 8천 피트(약 2400m) 고도에서 회항하려 했지만, 화재 때문에 추락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미사일로 격추됐다는 의혹은 전적으로 배제해야 한다"라고 외부 피폭설을 부인했다.

이란의 입장 변경은 미사일 격추설 또는 오인 폭격설이 힘을 얻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 불과 몇 시간 뒤 사고가 발생하자, 여객기가 이란 미사일에 피격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게다가 이란 정부가 사고 직후 섣불리 ‘기계적 결함’이라고 발표하고 블랙박스를 보잉사나 미국 연방항공청(FAA) 등에 넘기지 않겠다고 하자 이란 측이 사고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불거졌다.

이란이 미국 기업인 보잉사를 조사에 참여시킨 것은 미국과 타협할 여지를 만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8일 미군 기지 공격 때 고의로 빗맞히거나 이라크 등 제3국에 미리 알려 일종의 ‘중재’ 역할을 요청한 정황이 알려지면서 이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을 피할 ‘출구’를 열어줬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행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이란에 대한 제재를 승인했다”고 발표하면서도 구체적 대상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미국에서는 다수 항공사가 이란 상공 비행을 금지하라는 항공당국의 긴급 명령에도 운항을 계속한 것으로 나타나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여객기가 이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이륙하기 이미 2시간 30분 전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자국의 항공기 조종사와 항공사를 대상으로 이란, 페르시아만, 오만만 상공 비행을 금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 항공사가 FAA의 지시를 따를 의무는 없지만 보통 이를 따르는 편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 항공 당국은 9일(현지시간) 소속 항공사들에 이라크 상공을 피해 운항할 것을 지시했다. dpa통신은 유럽항공안전청(EASA)에 소속된 독일 루프트한자 등 일부 유럽 항공사들이 이 같은 지시에 따라 항로를 조정했다고 9일(현지시간) 밝혔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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