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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미국 요청 거부 차베스에게 무기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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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러시아를 방문 중인 우고 차베스(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10억 달러(약 9500억원) 규모의 무기 수입 계약에 서명한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베네수엘라는 러시아제 수호이-30 전투기 30대와 군용 헬리콥터 30대를 사들일 예정이다. AK-47로 불리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도 10만 정이나 구입한다. 러시아의 기술 협력을 얻어 자국에 소총 공장을 세우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차베스의 러시아 무기 구매 목록에는 잠수함 2~3대도 포함될 수 있다"고 26일 전했다.

양국 간의 무기 거래를 가장 주시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 자신의 앞마당인 남미에서 공공연히 반미를 외치는 베네수엘라가 거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러시아제 무기가 베네수엘라에 쏟아져 들어오면 가뜩이나 밉살스러운 차베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미국은 그래서 러시아에 이미 여러 차례 "베네수엘라에 무기를 파는 것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대변인은 "베네수엘라의 무기 구매 계획은 방위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남미의 지역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의 요구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최근 자국의 민주주의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미국에 공공연하게 불쾌감을 드러내 왔다.

특히 미국은 최근 옛 공산권인 폴란드에 48대의 F-16 전투기를 팔아 러시아의 신경을 건드렸다. FT는 세계안보연구소 소속 전문가인 이반 사프란추크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에 무기를 파는 것은 미-폴란드 전투기 거래에 대한 맞대응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차베스가 이번에 러시아를 찾은 것은 무기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차베스는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을 돌고 있다. 그는 자신이 '내 친구(Mi Amigo)'라고 부르는 푸틴에게 지지를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러시아 방문에 앞서 벨로루시를 찾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지지를 끌어냈다. 양국은 '세계를 광기와 전쟁에서 구하기 위한' 전략적 동맹도 체결했다. 다분히 미국을 겨냥한 행동이다. 미국은 물론 베네수엘라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대신 과테말라를 밀고 있다. 이 문제는 10월 유엔 총회에서 결정된다.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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