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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내세요" 노란 조끼 도움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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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계속되는 수해에 농사를 접을 생각까지 했었어요."

지난주 집중호우로 9000여 평의 농작물 피해를 본 김용철(39)씨는 수해복구 자원봉사자 900여 명의 일손을 보며 새롭게 시작할 각오를 다졌다.

자원봉사자들이 집중호우로 붕괴된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농가의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있다. 25일 하루에만 15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대신면 천남리·천서리·가산리에서 수해복구를 도왔다. 여주=변선구 기자

25일 오전 9시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남리 김씨의 농가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해복구 자원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했을 때 농가로 들어가는 다리는 끊어져 있었고, 비닐하우스 22개 동은 비에 무너지거나 불어난 남한강 물에 휩쓸려 쓰러졌다. 상추.대파 등 농작물은 물에 씻겨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엔 물살에 떠내려온 나뭇가지만 무성했다.

김씨는 여주군에서 농사를 시작한 2002년에도 태풍 매미로 피해를 보았다. 당시에는 피해가 크지 않아 자비를 들여 해결했지만 이번에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이날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은 망연자실한 김씨를 찾아 개천을 맨발로 건너와 뙤약볕 아래서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물결에 밀려 내려온 모래를 치우는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김씨는 "모래가 밀려와 토질이 바뀌는 바람에 농사를 포기하려 했는데 많은 사람이 와서 도우니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와 한국자원봉사협의회,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2006 수해 복구 자원봉사'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여주군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하루 평균 30여 개의 비닐하우스와 5000여 평의 농지가 깨끗하게 정리되고 있다. 여주군 자원봉사센터에는 26일 현재 전국 각지에서 개인.단체로 2500여 명의 자원봉사 신청이 밀려들었다.

◆ 전국에서 자원봉사 손길=대신면 천서리에서 5300평 농사를 짓던 이기자(49)씨는 "자원봉사자들의 숙련된 손놀림 덕분에 작업이 빨리 끝났다"고 고마워했다. 이씨는 하우스 안의 시금치.열무 썩는 냄새 때문에 며칠째 잠을 못 이뤘다. 대파.고구마 등은 모두 물에 잠겨 있다가 25일 5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도착하고 나서야 뽑혔다.

적십자 논산 지부회 소속 43명과 함께 여주 소식을 듣고 논산에서 달려온 유재성(52)씨는 "이번 호우로 우리 비닐하우스도 몇 개 쓰러졌다"며 이씨를 위로했다. 유씨는 익숙한 솜씨로 비닐하우스의 철골 구조물을 해체하고 땅에 깊이 박혀버린 호스를 뽑아내 터를 손질했다. 이날 오후 농장의 비닐하우스 28동은 완전히 정리됐다. 이씨는 "자원봉사자들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 3명이 했어야 할 일"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충남 예산에서 농사를 짓는 주재순(59)씨도 같은 동네 주부들과 함께 '아줌마의 힘'을 과시했다. 주씨는 "한창 농사지을 때지만 수해복구가 더 급하다는 걸 농사꾼들이 이해한다"며 낫을 들고 작물들을 뽑아 옮겼다.

3년 동안 짓던 참나물.열무.쑥갓 농사를 망친 마을 주민 박순성(65)씨는"이만한 일손을 사려면 농장을 새로 사는 가격이 필요하다"며 연방 '고맙다'는 말을 했다.

김호정 기자, 유은영 대학생인턴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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