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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미래] 얼굴 인식 오류율 0.37%…카드 안 대도 출입자 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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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이 멈춤 없이 3차원으로 얼굴을 인식하는 ‘워크 스루’ 프로그램을 적용한 출입구를 지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이 멈춤 없이 3차원으로 얼굴을 인식하는 ‘워크 스루’ 프로그램을 적용한 출입구를 지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굳게 닫힌 유리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지나갔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응시하지도 않았다. 이미 얼굴을 인식한 프로그램으로 출입구가 열렸다. 점심을 마치고 들어서는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보거나 고개를 돌리며 다른 사람과 대화했다. 모두 정식 출입인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가보니 #멈추지 않고 통행하는 ‘워크 스루’ #인천공항·제주카지노서도 도입 #스마트폰으로 찍어 위조지폐 감정 #긴급 DNA 감정 72시간 안에 통보

지난 7일 강원도 원주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센터에 설치된 ‘워크 스루(walk through)’의 모습이다. 워크 스루는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행할 수 있는 출입구다. 카드를 갖다 대고 카메라 앞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기존 정부청사 출입구와는 확연히 달랐다.

워크 스루에는 ‘얼굴 비교를 통한 개인 식별 방법’ 프로그램이 장착됐다. 국과수 디지털분석과장을 맡은 이중 박사가 발명했다. 지난해 12월 특허청 주최로 열린 2019년 하반기 특허기술상 시상식에서 ‘지석영상’을 받았다. 얼굴 옆면만 카메라에 찍혀도 3차원(3D)으로 일치 여부를 확인해 얼굴 정면을 그려낸다. 얼굴 인식률은 99.63%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의 우범 여행자 색출 시스템이나 제주도 카지노에서 불법 내국인의 출입 시도 자동 색출 등에 활용한다. 기존에 사용하던 고가의 일본산 제품은 워크 스루로 대체했다.

휴대전화 내장 칩을 분석하는 이정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사. 변선구 기자

휴대전화 내장 칩을 분석하는 이정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사. 변선구 기자

유전자 감정도 과학 수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 현장 증거에서 표본을 채취해 56℃의 용액에서 녹인 뒤 그 안에서 DNA를 분리한다. 추출한 DNA에선 필요한 부분을 증폭해 분석한다. DNA의 정확한 채취와 분리가 분석의 질을 결정하는 관건이다. 유전자 감정은 범죄 용의자를 파악하거나 신원 미상 사망자를 확인하는 데 쓰인다. 보통 분석을 완료하는데 2주 정도 걸린다. 급한 사건은 ‘긴급정밀실’에서 분석을 맡는다. 이 경우 72시간 안에 담당 경찰에게 결과를 통보한다.

디지털분석과는 위조 화폐 감정도 매년 400~500건씩 한다. 2018년에는 휴대용 위조지폐 감별장치를 스마트폰에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국과수의 특허 중 하나다. 일선 경찰이 위조로 의심되는 지폐를 촬영하면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위조지폐 여부를 간이 확인할 수 있다. 감정과 회신까지 2~3주가 소요됐던 시간이 평균 1~2일로 단축됐다.

필적이나 예술 작품 등의 감정도 디지털분석과의 몫이다. 2015년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위조한 그림이 미술품 경매에서 거래됐다. 범인들은 해당 그림 감정서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위작을 팔아넘겼다. 이들은 컬러프린터를 통해 가짜 감정서를 출력했다. 여기에 비밀이 있었다. 컬러프린터로 종이를 뽑으면 회사별로 다른 패턴을 가진 노란색 점들이 찍혀 나온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A4 용지를 확대해 파장을 조절하면 확인할 수 있다. 강태이 국과수 지능형위변조연구실장은 당시 프린터의 일련번호까지 찾아내 범죄를 입증했다. 실제 판독기에 가상으로 위조한 문서를 넣어봤다. 눈으로 보는 400~800㎚(나노미터) 파장에선 4.5%라고 쓴 것 같았다. 기계에 넣어 적외선 파장으로 보니 숫자 1을 4로 고친 흔적이 선명했다.

국과수에서 불에 탄 블랙박스를 분석하는 모습. 변선구 기자

국과수에서 불에 탄 블랙박스를 분석하는 모습. 변선구 기자

강 실장은 2013년 100억원짜리 수표를 위조한 사기단이 전액을 인출해 잠적했을 때도 위조수표를 감정했다. 그는 원래 수표에서 금액을 지우고 고친 흔적이 없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를 바탕으로 은행원이 범행을 도와 백지수표를 건넸을 가능성을 추궁했다. 은행원은 범행 사실을 실토했고 이를 근거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앞으로 과학수사는 어디까지 발전할까. 연구진들은 얼굴 인식 프로그램의 성능을 계속 업그레이드 중이다. 이 프로그램을 폐쇄회로 TV(CCTV)에 적용해 발전시키면 사람보다 정확하게 판단하는 얼굴 인식 인공지능(AI) 엔진이 탄생할 수 있다. 범죄 현장의 CCTV에서 아주 멀리 있는 얼굴을 식별하는 단계도 가능하다.

이중 과장은 “앞으로 수년 안에 CCTV 얼굴 인식 분야에서 AI가 사람의 능력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능력은 과학수사에 최우선으로 이용될 것”이라며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는 주인공을 알아보는 광고탑과 같은 세상이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원주=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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