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정도 잘 아는 "참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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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수년 전 나는 인도여행중 인도의 북부지방인 담살라에 가서 달라이 라마를 만난 일이 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잠시 후 거대한 체구를 가진 한 사람이 들어왔다. 천근무게와 같은 위압감이 나를 눌렀다. 그가 달라이 라마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인상은 퍽 부드러웠다. 목소리는 우렁차고 체구는 컸지만 그러나 그에게서 풍기는 인상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는 의외로 우리 나라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당시의 우리 나라 정치현실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정치지도자(고 박대통령)에 관하여 말들을 많이 하고있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장군 같은 사내다. 그러나 그와 3시간 남짓 같이 있는 동안 아주 상처받기 쉬운 문학소녀의 감성이 그에게 있는 것을 나는 발견했다. 말할 때마다 그 우렁찬 음성의 끝은 언제나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형님처럼 나 개인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고향이 이북이냐. 부모형제들은 모두 이북에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하며 안쓰러워 하는 모습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는 이제 조그만 한사람의 수행자로 되돌아가고 싶어했다. 「티베트의 살아있는 신」이니, 「티베트의 왕」이니, 「정신적 지도자」니 이런 부담스러운 자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는 짙은 허무감이 어리고 있었다.
설날저녁, 티베트청년들이 그의 숙소 앞에 와서 티베트국기를 게양하고 티베트국가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뒷길로 휘청거리며 그곳을 피해버렸다. 그가 영국국회에 가서 연설할때 『마오(모택동)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받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나는 정치적 지도자로서 마오를 존경한다. 마오는 나에게 티베트를 공산화하라고 했다. 대승불교의 이상과 코뮤니즘의 이상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둘 다 사유를 배격하고 공유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현방법이 달랐다. 그래서 나는 마오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대승불교의 이상을 정치실현화 하려고 했다. 결국 우리는 그 방법에서 일치점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티베트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정치지도자로서의 마오를 존경한다.
이처럼 그는 적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적의 장점을 존경하고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우리 티베트인들의 사명은 중국인들의 영혼을 자각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돌아올 때 그는 회랑까지 나와 잘 가라는 말을 남기고 되돌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티베트의 신이 아니라 별로 가진게 없어 보이는 한인간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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