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개혁 실패 땐 과거 회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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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독은 7일 정국혼란의 조짐 속에 건국 4O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동독은 소련블록에서 위기에 처해있는 몇 나라 중 하나다.
소련은 고르바초프 서기장 등 지도층이 시인하고있듯이 경제붕괴의 기로에 서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피폐한 경제상황을 정치적 소요로 연관시켜 나가고 있다.
서방, 특히 미국이 이 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수동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대처방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남의 고통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른바 「샤덴프로이데」 에 가까운 느긋한 기분으로 공산주의자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안도하는 기분 속에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같은 행위는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타기 해야할 것이며 무엇보다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소련이 붕괴할 경우 다른 많은 것도 함께 안고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사회 속에 이성을 회복시키고 있다. 소련은 마침내 이성을 갖고 토론과 진실을 얘기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외부세계는 물론 자국의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소련이 만약 실패하게 된다면 비이성적인 과거로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공허하게 남아있는 시베리아의 수용소들, 소련공산주의 70년 동안 숨져간 수천만 명의 희생자, 그리고 공포 속에 살아온 수억 명의 인민들에게 고통스런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소련 및 동구에 산재한 대규모 묘지들이 이 같은 비 이성으로의 회귀를 촉발할지도 모른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소련과 동구를 위한 또 다른 마셜플랜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2차대전 직후인 47년 당시 미 국무장관 마셜은 전후의 괴멸적인 상황에서 경제적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던 유럽을 구하기 위해 획기적인 미국의 대 유럽 원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당시 서구에 해당되는 상황이 오늘날 동구에서 그대로 재현되고있다.
마셜 플랜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사실은 상기되어야 한다. 그 하나는 전전과 전시 중에도 유럽경제는 막강한 힘으로 버텼으나 다시 그 힘을 찾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그 복구를 가능케 했던 힘은 미국의 돈보다는 유럽인 자신들의 자신감 회복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동구와 소련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사실상 인민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해내고 효율과 품질문제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갖춰야하는 것이다. 동구에는 이 같은 「과제」가 4O년간 존재하지 않았으며 소련의 경우는 무려 70년 동안이나 없었기 때문이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은 폴란드기업에 대해 매년 10억 달러규모의 장기 저리 차관을 제공할 유럽폴란드은행을 EC 내에 설치할 것을 제안한바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대 정부 차관이나 보조금보다 훨씬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과다할 정도의 대 폴란드 차관이 제공됐으나 대부분이 낭비로 끝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는 노하우와 재건계획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혁바람이 불고있는 동구국가들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 폴란드 공산당원이 최근 서방에서 행한 한 연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은 지난 39년(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의한 2차대전의 발발 ‥ 편집자)에 우리를 포기했으나, 우린 그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폴란드인들은 서방 국경지역과 국내에서 당신들과 우리들 자신을 위해 싸웠다. 그후 당신들은 44∼45년 우리를 역시 포기했다. 그리고 이제 당신들은 또다시 우리를 버리려 하고 있는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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