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군복무 대신하는 병역특례 왜 이공계 출신이 많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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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하지만 군대에 가지 않고도 간 것으로 간주하는 특별한 제도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이를 병역대체복무라고 하는데 '병역특례'로 줄여 부르기도 한답니다. 2년 넘게 군대생활을 안 해도 병역을 다 마친 것으로 하니 '특례'라는 말이 붙는 것입니다. 혜택을 준다는 말이지요. 병역특례를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공계 출신입니다. 물론 축구.야구 등 스포츠 스타에게 이런 혜택이 주어진 적이 있지만 그 숫자는 아주 적습니다.

왜 이공계 출신에 이런 혜택을 줄까요. 우수한 청소년이 이공계로 많이 진학하도록 해 국가적으로 부족한 이공계 연구원과 산업기능 요원을 메워보자는 것이 정부의 생각입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 인력을 확보하자는 뜻도 있지요. 이쯤 되면 병역특례가 국가나 산업체.개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병역특례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1973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생 모두에게 특례를 준 것이 처음입니다. 벌써 33년이나 지났네요. 그만큼 효과가 좋아 지금까지 없애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73년 당시 KAIST 졸업생 65명은 군대에 가지 않고 연구소에서 계속 자신이 전공한 분야를 연구할 수 있었어요. 물론 그 사람들은 일반 직장인과 비슷한 월급도 받았습니다. 파격적인 혜택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일부 남자들은 군대 가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국민의 의무이긴 하지만 고달픈 군대생활을 기꺼이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혜택을 받으려면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파격적인 혜택이 KAIST 졸업생에게 주어지자 KAIST에는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렸습니다. KAIST가 명문대학으로 자리를 잡는 데 병역특례 제도가 큰 힘이 된 것이지요. 현재 병역특례를 받고 있는 사람은 예.체능계를 제외하고 4만4927명입니다. 그중 이공계 대학원 이상을 졸업한 사람을 대상으로 뽑는 전문연구요원이 8556명입니다. 이공계 대학 또는 고교를 졸업했거나 재학 중인 사람이 갈 수 있는 산업기능요원은 2만3723명입니다.

◆국가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나=정부에서 세운 연구소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2003년 말 병역특례자 중 전문연구요원이 나라 경제에 얼마나 이바지했는 지를 연구한 적이 있어요. 그 결과를 보면 전문연구요원이 2003년 한 해 동안 약 2조9000억원의 산업매출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이를 산업별 평균으로 따지면 약 1200억원에 이릅니다.

그럼 산업별로 얼마나 매출을 올렸는지를 알아볼까요. 컴퓨터.사무기기 분야가 가장 많았습니다. 약 1조1000억원(38.4%)에 달했어요. 그 다음은 반도체.통신장비.정밀기기(22.6%), 석유화학.플라스틱(15.4%) 차례였습니다.이를 보면 이 제도가 나라 경제에 두루 이바지한 것을 잘 알 수 있지요. 또 병역특례자들이 어떤 분야에서 산업에 도움을 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병역특례자를 고용하고 있는 업체에 설문조사를 해봤습니다. 그 결과, 신제품 개발을 아주 잘한다고 해요. 신제품 개발은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거든요.

◆악용 사례도 많아=특혜가 있는 곳에는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매년 병무청에서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하지만 '열 명의 경찰이 도둑 한 사람 잡기 어렵다'는 말처럼 병력특례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병역 특례자를 뽑을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기업체의 사장이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회사에 불러들여 놀게 하거나,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하도록 하는 일도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기업에 병역특례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기업체는 병역특례자들의 의무 근무기간(3년) 동안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병역특례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답니다. 우수 인재의 두뇌를 썩히지 않고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 병역특례 제도에 먹칠을 하는 고약한 사례입니다. 총칼 대신 두뇌로 나라 경제를 지키라고 했는데 이런 일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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