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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합 없이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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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경자년(庚子年) 새해 아침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극심한 분열을 경험했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 갈등하고 배제했다. 광장은 ‘조국 수호’와 ‘윤석열 사수’로 갈렸다. 국회도 세밑까지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당은 검찰보다 더 센 ‘괴물’을 만드는 공수처법과 당리당략으로 누더기가 된 선거법을 제 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했다. 협치란 걸 찾아볼 수 없는 난장판 국회는 국민에게 갈 데까지 간 모습만 보여줬다.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정치권은 연일 막장극을 선보이는 현 상황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경자년 새해 #문 대통령이 갈등 넘어 통합 물꼬 터야 #생전 DJ “80% 내주고라도 통합하라”

경자년에도 그럴 것인가. 올해 경제는 심각하다. 지난해엔 성장률이 2%가 될까 말까였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시기를 빼고는 최악이다. 투자와 소비 역시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른 건 평당 1억원이 넘은 강남의 아파트값뿐이다. 대외적으론 북핵 리스크가 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믿고 한·미가 인내심을 가졌지만 핵은커녕 미사일 하나도 못 줄였다. 허송세월한 꼴이다. 오히려 북한은 ‘새로운 길’ 운운하며 긴장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올해는 총선도 치러진다.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선동으로 민심이 더 갈릴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대외적 불안이 고조될 때일수록 절실히 요구되는 게 통합이다. 지난해 우리가 경험했듯 갈등하고 분열해선 한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특히 위정자들이 이 시대의 심각함을 깨닫고 엄중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누구보다 문 대통령이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감히 약속드린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예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사에서 제일 먼저 한 약속이었다. 돌이켜보건대 이 약속은 사실상 물거품이 돼 가고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반대편보다 지지층만 바라보는 대통령이었다. 야당을 정치적 파트너라기보다 정쟁만 일삼는 집단으로 치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회의를 주재하며 “20대 국회 내내 정쟁으로 치달았고 마지막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국회를 질타했다. “볼썽사납다”는 표현도 썼다. 정쟁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공수처법에 대한 여당의 강행 처리로 빚어진 일이란 점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의 인식에 통합이나 협치란 단어가 과연 있는지 의문스럽다.

여권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80%를 내주고라도 통합하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이 평생의 목표이며 그 꿈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며 DJ의 뜻을 이었다. 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국정 기조를 ‘마이 웨이’에서 통합으로 한 발짝씩 옮겨가야 한다. 소통 행보로 쓴소리와 반대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진영 정치, 반쪽 통치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의 통합 대통령이 돼야 한다. 경제 정책에서도 소신만 고집할 게 아니라 재계와 시장의 제안에 귀를 기울여 소득주도 성장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북핵 문제는 일방적 북한 감싸기에서 벗어나 냉정해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제 혐오를 끝내고 진정한 화쟁(和諍)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했다. 화쟁이란 원효의 사상으로 각 종파의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을 시도하려는 이론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취임식의 약속대로, 저서의 제안대로 해주기를 바란다. 통합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반드시 이뤄내야 할 일이다. 새해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