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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작심 신년사 “권력으로 국민 선택 왜곡 땐 엄정 대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윤석열. [뉴시스]

윤석열. [뉴시스]

“돈이나 권력으로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왜곡하는 반칙과 불법을 저지른다면 철저히 수사해 엄정 대응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유불리 따지지 않고 바른 길 가야” #법조계 “선거개입 수사 정당성 강조” #공수처법 통과에 불만 표현 분석도 #한국당 “공수처는 위헌, 헌소 낼 것”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논란 이후 처음으로 신년사 형식을 빌려 나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일성은 의미심장했다. 4월 총선을 지목해 내놓은 발언이지만,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받는 청와대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윤 총장이 공수처법 최종안에 대해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불만 등 다중적인 함의를 담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윤 총장은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2020년 신년사에서 총선을 언급한 뒤 “선거 사건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단순히 기계적 균형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정치, 경제 분야를 비롯해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불공정에 단호히 대응하는 것은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라며 “지금 진행 중인 사건의 수사나 공판 역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켜내기 위해 국민이 검찰에 맡긴 책무를 완수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총장으로서 헌법정신과 국민의 뜻에 따라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여러분의 정당한 소신을 끝까지 지켜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 과정에서의 청와대 선거개입 및 후보매수 의혹 사건 핵심 연루자로 지목받는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대의 민주주의의 훼손’이라 규정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여권과 지지층에서 검찰을 공격하며 수사를 뒤흔들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 마디로 ‘모든 것은 내가 지고 갈 테니 원칙대로 수사하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년사에는 최근의 공수처 논란을 의식한 듯한 문구도 보였다. 윤 총장은 “형사사법 관련 법률의 제·개정으로 앞으로 형사 절차에 큰 변화가 예상되나, 부정부패와 민생범죄에 대한 국가의 대응 역량이 약화하는 일이 없도록 국민의 검찰로서 최선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어떤 사사로운 이해관계도, 당장의 유불리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바른길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헌법정신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검찰의 책무”라고 했다. 헌법정신의 강조뿐 아니라 일부 헌법 구절을 직접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공수처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불렀다. 공수처에 대해 위헌 논란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자유한국당은 “헌법에 설치 근거가 없는 공수처가 검찰 위에서 사건을 보고받고 지휘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주장했다. 대검 관계자는 “신년사는 대검 간부들과 논의를 거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윤 총장이 직접 작성한다. 공수처법 통과 등 환경 변화에 대한 입장을 담을지에 대해 당일 아침까지도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한편 윤 총장은 사퇴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검 간부는 “윤 총장은 독소조항 때문에 격노했던 것이지 공수처 자체를 반대했던 건 아니었다”며 “윤 총장이 사퇴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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