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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 풀린 만18세 50만 표심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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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지난 27일)로 당장 내년 총선부터 선거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거 연령 18세 하향’을 처음 대선 공약으로 내건 지 23년 만이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토대로 추정하면 새로 투표권을 갖게 된 이들은 약 50만 명. 이 중엔 2002년 4월 16일 이전에 태어난 고3(만 17세) 학생도 5만 명이다. 청소년이 정치 참여의 주체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와 함께 ‘교실의 정치화’ 우려가 제기된다.

특정 정당 맹목적인 지지 안해 #사안·정책에 따라 가치판단 특성 #한국당 “교실 정치판·난장판 된다”

선거 연령의 하향조정 필요성을 주장해 온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환영한다. 내년 총선부터 청소년·청년 관련 맞춤형 공약으로 표심을 끌어오겠단 계획도 세웠다. 민주당은 인재 영입과 관련해서도 ‘청년’을 테마로 정했다. 당 차원에선 청년세(청년을 위한 세금), 청년신도시 등도 논의 중이다.

반면에 자유한국당은 고3 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생기면 학교 현장이 정치색으로 물들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역사와 사회와 현실 왜곡 교과서로 학생들을 오염시키면서 선거 연령까지 18세로 낮추면 고등학교는 정치판·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만 18세는 여론조사에서 제외돼 표심을 알기 어렵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18세는 말 그대로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선거 연령 하향 조정이 특정 정당 유불리로 직결되긴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유색인종·청소년 등 선거권 확대 역사를 보면 ‘이들이 성숙한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겠냐’는 우려가 컸지만 결과적으로 충분히 정치적으로 성숙해 있었고, 정치적 주체가 될 역량을 갖고 있었다”며 “다만 조국 전 장관 사태로 알 수 있듯 10대 후반~20대 초반 젊은 층은 특정 정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보다는 사안·정책별로 가치 판단을 하는 특성이 있어 선거 판세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2일 내년 총선에 앞서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하고 모의선거를 하는 ‘2020 총선 모의선거 프로젝트 학습’ 계획을 발표했다. 대상은 초등학교 10개, 중학교 11개, 고등학교 19개등 총 40곳으로, 학생들은 지역구 후보자가 결정되면 공약 실현 가능성을 토론하고, 각자 판단에 따라 모의 투표도 한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선거 교육’ 명목으로 특정 정치 성향을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어서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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