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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이론가'들도 등 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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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종석 통일부 장관, 서주석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서동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

이 네 사람에게는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이란 공통 이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노무현 정부 통일외교정책의 주춧돌을 놓은 이론가다. 3년 반이 지난 지금 넷 중 윤 전 장관(서울대 교수)과 서 전 실장(상지대 교수)은 캠퍼스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 윤 교수와 서 교수가 잇따라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 있는 자리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생각이 바뀌어서일까.

◆ 핵심 이데올로그들의 비판=비판의 방향은 달랐다. 서 교수가 진보 진영의 시각을 대변하는 쪽이었다면, 윤 교수는 그 반대쪽에서였다.

서 교수는 25일 기자와 만나 "한국이 북핵과 미사일 문제에서 조연으로 전락한 면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격정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무엇보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 후 정부 대처가 안이했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고 동력을 살려가야 했는데 대통령이 대연정이라는 내정 문제로 가버렸다"고 했다. 특히 "청와대 안에 수석급을 만만한 사람들로 임명하다 보니 모두 예스맨으로 채워진 탓이 크다"고 꼬집었다. 그는 남북관계의 신뢰를 손상시켰다는 점에서 대북 송금 특검을 최대의 실책으로 꼽았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정부가 너무 일찍 자기 발목을 잡는 발언을 한다"며 "쌀 지원을 늦출 수도 있고 나중에 상황을 봐서 안 줄 수도 있는데 보수 여론을 너무 의식하고 미리 선언해 스스로 입지를 좁혔다"고도 했다.

윤 교수는 24일 한국중등교육협의회 하계 연수특강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식의 감정적 민족주의가 시대의 키워드가 돼버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미 자주외교 노선을 겨냥해 "동맹을 해체해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 자주를 아무리 많이 구가해도 정작 국가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외교적으로 고립돼 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도 비판했다. "대북 경협이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돕는 일이 돼야 했는데 김대중 정부 때와 같은 포용정책을 계속해 북한이 큰소리치면서 지원을 받아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 옛 참모들에게 공격받는 노 대통령=북한 미사일 발사라는 굵직한 외교안보 이슈가 터지면서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자주라는 이상에만 집착해 한.미.일 공조도 깨지고 남북관계도 위협받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게다가 한.미동맹이 헝클어지면서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미.일동맹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일본의 군비 강화 움직임은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의 우군이었던 진보 진영조차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 FTA 협상 등을 계기로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과 이정우 대통령 정책특보 등은 이미 이런 여론을 이끌고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들 속에서 노 대통령의 대북.외교정책에 대한 여론 지지층이 점점 엷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고립이다. 이병완 비서실장이 21일 "극우세력과 극좌세력으로부터 참여정부가 공격받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토로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외교안보 분야의 옛 참모들인 윤 교수와 서 교수의 비판은 공교롭게도 현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두 교수의 비판에 청와대 측은 공식 대응하는 대신 침묵했다. 내심으론 서운해하는 기색도 감지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정부를 떠난 지 오래돼 두 사람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모를 수 있다"며 "지적하는 것들 중에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는 감성이 아니라 차가운 계산으로 해야 한다"는 윤 교수의 지적이나,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역할이 없는 게 문제"라는 서 교수의 고언은 한때 한 배를 탔던 청와대 사람들의 가슴을 후비고 있다.

이영종 기자

◆ 윤영관 전 장관은=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참여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을 지냈다. 그가 쓴 '21세기 한국정치경제모델'이란 책이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줬다. 2001년 말 당시 대선 후보인 노 대통령이 "책을 감명깊게 읽었다"고 연락한 것을 계기로 외교안보분야 자문을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석.박사를 마쳐 미국통으로 불린다. 하지만 2004년 1월 노 대통령과 불편하게 헤어졌다. 균형외교를 중시한 그에 대해 "외교부를 개혁하라고 보냈는데 오히려 그쪽 논리에 빠져들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 서동만 전 실장은=2003년 4월부터 2004년 2월까지 10개월간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다. 윤 교수와 비슷한 시기에 노무현 대선 후보 캠프에 참가해 외교안보 정책을 자문했다. 북한학계의 진보 소장학자로 꼽힌다. 국정원 기조실장에 내정된 뒤 국회 정보위 인사청문회에서는 "서해교전은 군사적으로 계획된 선제공격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우발성이 있는 북한의 실수"라는 발언을 야당의원들이 문제삼는 등 '친북좌파' 논란이 일었다. 대학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경력도 있다. 고영구 당시 국정원장과 국정원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계기가 돼 공직에서 물러났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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