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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한·미 FTA, 도전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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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리고 있는 듯하다. 두 차례의 협상을 거쳐 3차 협상이 목전에 있는데도 원론적인 찬반 공방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몇몇 식자의 말대로 체결되지 못하면 정권이 망하고 체결되면 나라가 망한다면, 정권보다 나라를 선택해야 함은 자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안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선택도 결코 택일적일 수 없다.

분명 한.미 FTA는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다. 자유무역을 통해 대국보다 소국이 보다 큰 이익을 얻는다는 2국(國) 2재(財)의 단순모델이 적용될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경제적 득실에 대한 계산도 간단치 않다. 그렇다고 종속이론과 같은 추상이론을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복합적인 현실이 용납하지 않는다. 당장의 이해득실보다 개방의 자극과 그에 따른 경쟁력 제고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지만, 반드시 도약의 기회가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총체적인 위기에 대한 우려 역시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현상 유지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미래와 변화에 도전하는 것이며, 가능성과 기회에 도전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 도전을 선택하였다. 미국과 우리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FTA를 추진하자고 했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느 선택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제약 요인 하에서 이루어진 이 선택의 배경에는 단순한 경제적 득실을 넘어 여러 차원의 종합적인 고려가 있었을 것이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양심과 소신에 따른 선택임을 강조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물론 FTA 대상국의 순서나 한.미 FTA의 협상 시한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선택 자체에 대한 시비는 이제 제쳐놓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초기에 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한.미 FTA의 추진에 대한 여론이 반전(反轉)되고 있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국정 최고 책임자를 보필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장외'에서 반대 논의에 불을 지피거나 기름을 붓는 과거에 볼 수 없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과정 관리를 해 나가야 할 책임 있는 당국자들 가운데서도 "하다가 잘 안 되면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언급이 튀어나옴으로써 정부의 선택 의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는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

정교함이 요구되는 협상 국면에서 거친 언동은 자제되어야겠지만, 여기에는 관련자 사이에 원활하지 못한 소통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에 대한 여론의 반전도 정부와 국민 사이의 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여전히 여론은 한.미 FTA를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추진 방식에 반대하는 것으로 읽힌다. 협상을 이유로 지나치게 비밀주의를 고수한 것도 문제려니와, 꾸준히 해왔다는 사전 준비에 대해서도 정부가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이 크다. 반대 여론이 세를 얻어가고 있는 상황일수록 반대론(자)에 대한 직접적인 반격보다 소통의 폭을 넓히고 내용을 심화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최근 정부가 그동안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내 팀을 꾸려 국민과의 소통을 본격화하기로 한 것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외 협상에서 국민의 이해보다 더 큰 힘은 없다. 도전의 선택에 대한 양심과 소신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상하고 성의 있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회복하여 선택한 도전에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해 보지도 않고 '해 봤자 깨지게 마련'이라는 예단에 심약해질 이유도 없고 '협상 중단' 카드를 미리 준비할 필요도 없다.

김대환 인하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