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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명 사상' 광주 모텔 방화범 "누군가 날 쫓아온다" 횡설수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3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모텔 방화 용의자가 "누군가 날 쫓아온다"는 비상식적인 진술을 반복하고 있다. 경찰은 범행동기를 밝히지 않는 용의자를 상대로 정신과 전문의 소견을 확보하고 프로파일러를 투입한다.

경찰 조사에서 범행동기 안밝혀 #"불 붙였다"는 범행사실만 인정 #구속영장 신청·프로파일러 투입

지난 22일 오전 5시45분쯤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방화 혐의로 긴급체포된 김모씨(39)가 병원 치료를 마친 뒤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22일 오전 5시45분쯤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화재가 발생해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방화 혐의로 긴급체포된 김모씨(39)가 병원 치료를 마친 뒤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는 모습. [뉴스1]

23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자신이 투숙하던 객실에 불을 질러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해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 혐의를 받는 김모(39)씨를 상대로 한 수사에 프로파일러와 정신과 전문의가 투입된다.

지난 22일 오전 5시 45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화재로 투숙객 2명이 숨지고 3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김씨는 당시 3층 객실에서 혼자 투숙했다. 김씨는 경찰에 "라이터로 베개에 불을 붙였고 화장지를 올려둔 뒤 이불로 덮어뒀다"며 자신의 범행 과정을 털어놨다. 또 "불을 지르고 무서워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지난 22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불이 나 수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로 훼손된 모텔 내부에 연기가 차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불이 나 수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로 훼손된 모텔 내부에 연기가 차 있는 모습. [연합뉴스]

경찰은 김씨가 투숙한 방의 침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불탄 점을 확인하고 해당 객실의 투숙객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또 불이 심하게 난 방 창문으로 "화염이 분출하고 있다"는 진술 등을 확보한 점을 들어 방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봤다.

김씨는 범행 뒤 하루 동안 이어진 경찰 조사에서 방화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범행 동기에 대해 횡설수설을 반복하고 있다. 김씨는 불을 지른 뒤 자신의 객실을 빠져나간 뒤 짐을 챙기러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연기를 흡입하고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어 경찰 조사가 이뤄졌었다.

김씨는 병원에 입원한 도중에도 경찰의 범행 사실을 묻는 경찰의 질문에는 시인했지만, 유독 범행 동기는 밝히지 않고 있다. 김씨가 왜 사흘 치 숙박비를 내고 모텔에 투숙했는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김씨에게 정신병력이 없는 점도 확인했지만, 재차 확인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경찰은 정신과 전문의에게 김씨의 상태에 대한 소견을 의뢰할 방침이다. 김씨가 신변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려 불을 질렀는지도 확인할 예정이다.

경찰은 23일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청구했다.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오는 24일로 예상된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지난 22일 긴급체포된 뒤로 현재까지 누군가에게 추적당하거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진술을 반복 중이다"며 "현재로써는 정확한 범행 동기를 밝혀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 정신 감정 의뢰와 함께 프로파일러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재 당시 모텔 내부로 진입한 소방관들이 문을 두드리며 투숙객들을 깨웠던 사실도 확인됐다. 광주 모텔 화재 생존자 A씨는 "새벽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복도에서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고 전했다. 불이 난 모텔은 주말과 휴일을 맞아 50여 명의 투숙객이 머물고 있어 대형참사가 우려됐었다.

지난 22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불이 나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 진화 후 인명을 수색하는 119 구조대원들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불이 나 2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 진화 후 인명을 수색하는 119 구조대원들의 모습. [연합뉴스]

갑자기 불길이 거세게 일어난 탓에 투숙객들의 대피도 쉽지 않았다. 3층에서 시작된 불이 위층인 4~5층으로 번졌고 연기로 인해 투숙객 대피가 어려웠다. 한 투숙객은 비상계단으로 대피하지 못해 4층에서 몸을 던져 대피하기도 했다. 이 투숙객은 모텔에 설치된 천막 위에 떨어져 크게 다치지 않았다.

지난 22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불이 나 수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부상자를 구급차로 이동하는 모습이 찍힌 인근 폐쇄회로(CC)TV 화면 일부.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모텔에서 불이 나 수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부상자를 구급차로 이동하는 모습이 찍힌 인근 폐쇄회로(CC)TV 화면 일부. [연합뉴스]

화재 신고를 접수한 소방관들이 약 3분 만에 모텔로 진입했고 화재 경보음을 듣지 못한 투숙객들을 깨웠다. 경찰이 확보한 CCTV에서도 소방관들이 방문이나 벽을 두드리고 다니는 모습이 확인됐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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