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길에서 아기 바지 훅 내리고 "쉬~"…옳은 방법일까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30)

“어느 작은 마을에 빨강 망토를 입은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녀는 병든 할머니를 위해 엄마 심부름을 가다가 숲속에서 늑대를 만났다. 늑대의 꾐에 빠져 할머니와 소녀는 불쌍하게도 늑대의 먹잇감이 됐지만 착한 사냥꾼의 도움으로 늑대의 배 속에서 구출된다. 그러곤 늑대의 배 속에 돌을 넣어 우물에 빠뜨려 죽게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익숙히 알던 그림형제의 동화 ‘빨간 모자’ 이야기다.

"그것 봐. 어른 말을 잘 듣지 않으니 이런 일이 생기잖아…" "수상한 사람과 이야기하면 위험한 거야" "위험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보여도 나쁜 사람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 동화는 아이에게 이런 교훈을 주려 하는 것일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림형제의 동화보다 더 이전에 읽히던 ‘빨간 모자’ 동화가 있었는데, 이 동화는 샤를 페로라는 프랑스 작가가 상류층 자녀들에게 교훈을 제공하기 위해 민중동화를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어른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차원을 넘어서는 무서움이 있다.

빨간 모자라는 전래동화는 여러 나라에서 전승돼 오는데 모두 빨강 망토가 등장한다. 영화 '레드라이딩후드' 속 한 장면.

빨간 모자라는 전래동화는 여러 나라에서 전승돼 오는데 모두 빨강 망토가 등장한다. 영화 '레드라이딩후드' 속 한 장면.

“옛날 어느 마을에 빨간 모자라 불리는 아주 예쁜 소녀가 살고 있었다. 빨간 모자는 늑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다. 늑대는 빨간 모자에게 어디에 가는지, 할머니는 어디에 사시는지 모든 정보를 캐낸다. 할머니네로 가서 단숨에 할머니를 삼킨 후 심지어 할머니의 피와 고기를 와인과 고기로 속여 먹게 한다. 할머니 옷으로 변장해 침대에 누운 늑대는 ‘케이크와 버터를 식탁에 놓고 내 옆에 누워라’라고 말한다. 빨간 모자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질문한다. 할머니 몸은 왜 이런가요? 팔은 왜 이리 큰가요? 다리는? 이빨은? … 모두 너를 잡아먹기 위해서지… 꿀꺽.” 이 동화에서는 빨간 모자가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끝난다.

빨간 모자라는 전래동화는 여러 나라에서 전승돼 오는데 모두 빨강 망토가 등장한다. 많은 심리학자는 빨간 모자의 빨간색을 ‘가임기 여성’, ‘육감적 느낌’, ‘순결’로 해석했다. 반대로 늑대들은 난폭하고 간교한 부정적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샤를 페로의 동화 ‘빨간 모자’의 교훈은 늑대 같은 남자를 조심하라는 교훈적 성격이 강하게 읽힌다.

흔히 ‘늑대 같은 인간’ 혹은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나 빼고 남자는 늑대야. 조심해야 해!’라며 자신만은 안전하지만 세상의 다른 남자는 모두 늑대 같은 위험한 존재임을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비유를 늑대가 듣는다면 상당히 기분 나빠 할 말이다. 실제로 늑대의 특성은 무리 지어 행동하며 사람을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피하기까지 한다.

과거 동화 속에서 늑대들은 난폭하고 간교한 부정적 이미지로 등장한다[사진 pixabay]

과거 동화 속에서 늑대들은 난폭하고 간교한 부정적 이미지로 등장한다[사진 pixabay]

이후 ‘빨간 모자’라는 동화는 수많은 패러디 작품으로 창작된다. 이 패러디 작품 속 빨간 모자는 더 이상 피해자로만 등장하지 않고 점점 현명하게 자신의 문제에 스스로 대처하는 능동성이 부각되는 빨간 모자로 발전하게 된다.

제임스 서버의 ‘어린 소녀와 늑대’(1943)에서 빨간 모자는 할머니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이 할머니가 아닌 늑대임을 알아차리고 바구니에서 총을 꺼내 늑대를 쏜다. 울리케 페어쉬의 ‘빨간모자의 꾀’(2005)에서 빨간 모자는 할머니 침실로 가는 도중 동물의 털을 발견하고 열쇠 구멍으로 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사냥꾼 형상의 그림자를 만들어 늑대를 위협한다.

비교적 최근의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2013)에서는 과거 산속의 숲 대신 도시 숲이 동화의 무대다. 빨간 모자를 쓴 소피아는 엄마 심부름을 가던 중 불량배들에게 붙잡히게 되고 그들로부터 탈출하도록 도와주는 자칼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칼은 불량배와 한통속이었다. 자칼은 의도적으로 소피아에게 접근하고 친절한 얼굴로 소피아를 속인다. 과거 동화 속의 늑대가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현대판 아동 성 학대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동화다. 문제는 이 동화 속 빨간 모자 같은 사건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국공립 어린이집의 아동 성폭력 사건은 상상을 넘는 아동의 성적 행동에 놀라움을 주고, 여기에 대처하는 어른들의 방법에 다시 한번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성 학대는 상대적으로 힘이 더 센 사람(또래 친구지만 힘이나 몸집이 더 큰 친구)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친구를 성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다.

아동은 발달 단계상 만 3~5세에 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질문도 많이 하는 단계를 거친다(남근기). 이때 ‘나는 어디서 나왔어요?’ 같은 질문을 많이 하고, 유아 자위행위도 발생한다. 이때 부모는 아이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성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 주변은 사실 사방팔방이 왜곡된 성 인식을 심어주는 데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성 인식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아동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자의 선택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학대나 피해를 당해도 그것이 피해인지, 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 pexels]

아동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자의 선택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학대나 피해를 당해도 그것이 피해인지, 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진 pexels]

최근 보도를 보면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에서도 6개월간 수차례 친구 사이의 성 학대 행동이 반복됐고, 지켜보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나 선생님께 절대 비밀로 하게 했다. 우리는 아동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 비밀인지, 친구(가해자)와 약속했지만 어떤 것은 지키지 말아야 할 비밀인지를 알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또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에도 나쁜 접촉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무엇이 나쁜 접촉이고 나쁜 접촉과 좋은 접촉은 어떻게 다른지를 구분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동에게 성에 대한 인지력을 키워주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인 우리가 ‘선’을 넘지 않아야 함을 일상에서 몸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도 공공장소에서 보호자가 ‘쉬’를 하라면서 손자의 바지를 훅 내리고 컵을 대 주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가족 구성원은 너무 친밀한 사이이다 보니 사실 ‘선’을 얼마만큼 지켜야 할지가 모호한 경우가 많고, 가족마다 문화가 다르다. 그런데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예를 들어 각 가정에서 내가 샤워하고 나서 거실로 나올 때는 어디까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경계를 세우는 것. 아이가 속옷을 갈아입으려 할 때 “자 이제 속옷을 갈아입어야겠네.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을 수 있겠어?”라며 사적 공간에서 해야 할 일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것. 발달 단계상 아직 혼자 옷을 갈아입는 것이 불가능한 아동이라면 “옷 갈아입어야 하니 엄마가 팬티 벗겨도 되겠어?”라고 살짝 물어보고 팬티를 벗기는 것.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있지는 않은지, 노크 없이 자녀의 경계를 확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스마트폰을 아이 달래기 용도로 무분별하게 사용해 아이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일상의 작은 성 행동에도 동의를 구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동은 모두 성(性)적 학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돼야 할 권리가 있다. 아동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자의 선택에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황 판단이나 표현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학대나 피해를 당해도 그것이 피해인지, 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기 때문에 아동에게는 더 많은 권리 보장이 중요하다. 가정과 사회, 국가는 아동이 피해자가 돼서도, 또 가해자가 돼서도 안 되도록 철저한 예방체계를 갖춰야 할 때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