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상처 주는 가스라이팅, 혹시 당신도 가해자?

중앙일보

입력 2019.09.02 07: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26)

가스등이 켜진 어느 골목길. 1940년대 영국 주택가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사진 pxhere]

가스등이 켜진 어느 골목길. 1940년대 영국 주택가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사진 pxhere]

그 집의 가스등은 남편이 외출한 후엔 흐릿해지며, 그 집의 다락방에선 발걸음 소리가 난다. “두려워요. 저녁이 되면 불이 흐릿해져요. 그리고 가끔 발걸음 소리가 들려요.”

남편은 그때마다 “당신이 너무 예민해서 그래. 당신의 착각이야. 그저 상상일 뿐이야!” 남편은 상속받은 아내 폴라의 유산을 갈취하고자 의도적으로 주변 상황을 조작하고, “네가 문제야”라고 대응한다.

아내는 처음엔 아니라고 우겨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하루는 부부가 외출 준비에 분주할 때 남편은 어머니 유물이라며 브로치를 선물한다. 소중한 선물을 잘 간직하고 외출했는데 브로치는 온데간데없다.

남편의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미안함과 원망에 아내는 남편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른다(남편이 의도적으로 브로치를 숨긴 것을 모르는 채…). 이런 사건들이 반복될수록 아내는 신경쇠약증에 걸리고 점점 자신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존감은 낮아지고 남편의 정신적 덫에 갇히게 된다.

 잉그리드 버그먼이 출연한 영화 '가스등'은 남편의 끔찍한 정서적 지배에 자존감을 잃어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사진 가스등 스틸]

잉그리드 버그먼이 출연한 영화 '가스등'은 남편의 끔찍한 정서적 지배에 자존감을 잃어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사진 가스등 스틸]

이 상황들은 영화 '가스등'의 한 장면이다. 1948년 잉그리드 버그먼과 샤를르 보와이에가 주연한 흑백 스릴러 영화다. 70년 전의 작품이지만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영화다.

영화 속 이 부부관계는 사랑이라는 가면 뒤에 끔찍한 정서적인 강압적 지배가 있었다. 이 영화 제목을 인용해 심리치료사 로빈 스턴은 ‘Gaslight Effect’라는 심리용어를 등장시켰다. ‘가스라이팅’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현상을 말한다. 물리적 폭력만 없을 뿐 보이기 않는 엄연한 정서적 폭력이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의 끈을 갖고 살아간다. 가스라이팅은 수많은 관계들 안에서 발생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수직적 관계에선 권력이 형성돼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느끼도록 만들기도 하고, 혹은 상대를 쉽게 조정하고 싶은 욕구로 가스라이팅을 한다.

이 불편한 관계가 단지 부부 사이에서만 존재할까? 과거 직장생활을 했을 때 사사건건 촌놈이 출세했다며 나를 표적으로 삼아 끊임없이 말도 안 되는 시비를 쏟아내 괴롭히고 골탕먹인 직속상관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신의 권위에 쉽게 복종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가스라이팅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내 아이들에게 수없이 뱉어냈던 말인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이런 종류의 말들조차 어쩌면 내 자녀를 내 통제 안에 놓으려는 의도가 깔린, 본질은 가스라이팅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항상 상대방의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 왜 나는 늘 상대에게 사과할까? 왜 늘 그 상대 앞에서 변명을 늘어놓지? 상대방을 만날 때는 숨기는 것이 많아지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나를 점검하게 되지? ….”

모든 인간 관계에는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가스라이팅'이 나타날 수 있다. [사진 pxhere]

모든 인간 관계에는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려는 '가스라이팅'이 나타날 수 있다. [사진 pxhere]

이렇듯 직장이나 가정에서,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 모든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은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관계는 수평적이기보다 비대칭적 권력으로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때엔 가해자 자신도 스스로가 가스라이팅을 한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권력적 관계 안에서 반복적 질타의 대상이 된 피해자는 스스로를 비합리적이고 무능하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과연 내 말이 맞는가?’ 하고 자기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다음 단계에선 저항의 의지마저 잃게 된다. 결국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의 의지에 순종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돼 가는 것이다.

과거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사연을 들을 때 “아니 왜 맞고 살아?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왜 나오지 못하는데?”라며 가정폭력 피해자를 비난했다. 그러나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내면엔 이런 강압적 지배와 함께 대부분의 경우 물리적인 폭력에 의한 무기력증이 발목을 잡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억압하는 상대에게 자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자랑스럽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3월 영국에선 가정폭력에 관한 기념비적인 재판 결과가 나왔다. 2010년 8월 샐리는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남편의 머리를 해머로 내리쳐 사망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법정에서 샐리는 남편에 대한 집착과 평소 우울증으로 인한 의도적 살해 혐의로 최소 22년의 징역에 처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그 후 샐리와 리처드를 아는 지인들은 판결의 부당함을 이유로 재심을 신청했다. 첫 판결 후 8년 만에 재심이 열렸다. 재심을 통해 샐리는 훨씬 낮은 형량 또는 석방의 희망까지 갖게 됐다.

샐리는 리처드와 열다섯 살에 만나 결혼하고 헌신적인 엄마 역할을 했다. 리처드는 보기엔 평범하고 가정적인 아빠였다. 그러나 가까운 이웃과 자녀가 본 리처드는 늘 새로운 여성이 주변에 있었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면박을 주고 모욕하며 자신의 규칙에 따르기를 강요했다. 또 아내가 친구를 만나는 것을 통제하고 생활을 고립시켰다.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에 샐리와 자녀들은 모두 잔뜩 긴장해야 했다. 샐리는 점점 더 리처드에게 종속돼 갔고,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2010년의 첫 재판에선 30년의 결혼생활 동안 남편이 아내에게 가했던 의도적이지만 명확하지 않았던 학대 가스라이팅을 통한 강압적 통제에 대한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는 멍들고 피가 흐르지 않지만 엄청난 강압적 폭력이라는 것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가정폭력 상황도 마찬가지로 정서적 폭력이 처벌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특히 가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가스라이팅은 일일이 드러내지 못하는 사소한 가정사로 치부된다. 매 맞는 아내가 가정폭력이라고 신고했을 때에도 이를 형사사건으로 처리하지 않고 계도와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로 용서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상황이다.

이미 강압적 폭력에 놓인 약자는 샐리나 영화 속 폴라처럼 세상에 맞설 용기를 이미 잃었고, 경제력이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폭력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엄청난 샐리의 분노처럼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사건을 발생시킨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비대칭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주변인의 지지일 것이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이웃과 친구 등이다. 생각해 보자. 나는 누군가와 수평적인 관계 맺기를 잘하고 있는지?

손민원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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