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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 사업하겠다던 25세 재민이의 안타까운 죽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27)

한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칠칠 칠 등에서 떨어져, 팔팔 팔다리가 부러져, 구구 구급차에 실려가, 십십 십 초 안에 꼴가닥.” 이런 가사였다. 익숙하고 재미있는 리듬이었지만 초등학교까지 지배하는 현실 사회의 불안을 담기에 충분한 무서운 가사였다.

추석명절을 지내고 두 명의 젊은이에 관한 비보를 들었다. “엄마, 재민이가 죽었대.” 재민이는 아들과 초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낸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집 아이가 대학에 입학한 후 문득 재민이 생각이 났다. 당연히 대학에 진학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재민이는 어느 대학에 갔어?” 하고 소식을 물은 적이 있다.

아들과 초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 재민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었다. [사진 pixabay]

아들과 초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 재민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들었다. [사진 pixabay]

그때 아들은 “응, 재민이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요즘 공장에 나가고 있어”라고 말한다. “왜? 대학에 안 갔어?” 깜짝 놀라 물으니 “엄마는 인권을 강의한다면서 왜 사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꼭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해!” 하며 엄마의 편견을 나무랐다. 그런 말을 하는 아들에게 나 자신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재민이는 “자신은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고 공부도 더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대학 가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그 아이는 공장에 가서 일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심지어 대학생인 친구들을 만나서도 자신이 돈을 버니 밥을 산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고 나서 그는 작은 일식집을 차려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돈도 꽤 많이 모아 1~2년만 고생하면 작게나마 자신의 식당을 만들 수 있을 거라며 친구들에게 맛난 음식을 해주겠다고 말하곤 했다는데…. 그런 재민이가 배달을 하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25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안 된다고 걱정할 때 그 아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많이 불안하고 두려움을 더 많이 맞닥뜨려야 했을 것이다. 당연히 대학을 갔을 거라는 내 편견이 이 사회에는 아직도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민이는 그런 불안감, 두려움과도 싸우면서 자신의 목표을 향해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음식을 기다리는 어떤 고객을 위해 빨리빨리 시간 안에 배달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위험한 곡예 레이스를 펼쳐야 했다. 우리 가족은 재민이의 죽음을 통해 오토바이 배달 일이 안전한 시스템에서 운영되지 않고 있음을 알았고, 그 이후 우리는 짜장면을 배달시키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안전하지 못한 시스템 안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안전하지 못한 시스템 안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사진 pixabay]

노동 현장으로 나간 재민이는 안전하지 못한 배달 시스템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연일 뉴스에서는 사회 지도층 자녀들의 특혜가 장식되는 요즘, 거짓 없이 진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 왔던 재민이가, 그리고 지난해 화력발전소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다 죽음을 맞이한 고 김용균씨의 생애도 떠오른다.

또 몇 년 만에 제자 소식을 들었다. 혜진이라는 아이는 자해가 습관인 중학교 3학년 아이였다. 학교는 자신이 원할 때 나오는 곳이었고, 맘에 안 들면 수업 중에도 집으로 가버렸다. 출석일수가 모자라 중학교 졸업도 어려울 것 같아 선생님들은 어떻게든 혜진이를 학교에 오게 해 졸업시키려고 무진 애쓰셨다.

나는 혜진이가 상담실에 오면 늘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그래서인지 날 좋아하지는 않아도 자주 상담실에 와서 놀다가 갔다. 어느 날 혜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바닥에 떨어지는 빨간 액체를 목격했다. 다름 아닌 피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내 옆에 서 있던 그녀가 커터칼로 자신의 손목에 상처를 낸 것이다.

혜진이는 아버지와 할머니랑 사는 아이였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에는 혜진이를 향해 “공부도 못하는 년, 지 에미 닮아 뚱뚱한 년”이라며 욕을 하고 자주 그녀를 때리기까지 했다. 혜진이는 점점 더 반항적이고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로 변하고 있었다. 늘 남자친구가 있었고, 임신과 낙태를 반복했다. 아버지, 할머니와의 상담도 있었지만 그 가정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혜진이의 습관적 자해의 의미는 무엇인가? 외로움의 표시였고,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센 척했지만 누구보다 여리고 공부도 잘 해보고 싶은 아이였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 없던 차에 우연히 혜진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간 다른 학생을 만났다. 그리고 혜진이의 사망 소식이 들었다. 고2 여름방학,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봐 달라고 외치던 그녀의 마지막 자해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사회적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치가 필요하다. [사진 pexels]

사회적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치가 필요하다. [사진 pexels]

이들 모두가 사회적 보살핌의 부재에 의한 사회적 방임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또 한편에 사회적 보살핌의 부재에 의해 목숨을 잃는 청소년들이 있다. 이들은 끝도 없는 경쟁, 평가에 전투력을 소진하고 이번 생은 뭐를 해 본들 자신에게는 ‘노답’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자포자기하며 목숨을 버리고 있다.

이렇게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분노와 좌절이 가슴 안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이 분노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들보다 더 약한 자에게 혐오의 탈을 씌운다.

국가가 하나의 큰집이라면 비바람이 들어올 땐 수리해서 막아 주고, 집에 사는 사람이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일을 하는 ‘집사’가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의 집엔 ‘집사’가 없어 안전하지가 않다. 너무 많은 곳에서 바람이 들어오고 비가 새고 있는데 각자 알아서 그것을 피하라고 한다.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집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부디 재민이와 혜진이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약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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