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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정세균의 첫번째 시험대, 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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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뭐 그리 대수인가. 의전 서열 2위에서 5위로 떨어진 게. 국회의장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을 하다가 총리가 된 러시아의 푸틴과 메드베데프도 있지 않은가. 이웃 일본의 아소 다로 재무상은 총리 경력에도 아베 내각의 일원이 됐다. 삼권분립? ‘제왕적 대통령’이 버티는 우리 현실에서 솔직히 이상에 가깝지 않나. 예산안 통과 때 현직 국회의장의 처신을 보라. 정권이 바뀌면 법정 분위기가 달라지는 법원도 크게 할 말은 없을 듯하다.

산자부 장관 때 보인 원전 긍정론 #정권 이미지용 총리 벗어나려면 #탈원전 아성 깨기에서 시작하길

냉소적으로 들리는가. 전직 입법부 수장이라는 체면을 던지고 선택한 자리인 만큼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달라는 이야기다.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정세균 총리 후보자의 소신을 글자 그대로 믿고 싶다. 물론 우리 권력 구조에서 총리 위상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도전이다. 대통령이 총리들에게 약속했던 ‘분권형’ ‘책임형’이라는 수식어는 거의 언제나 부도 수표가 됐다. MB 시절 경제 장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공직 생활 내내 총리라는 자리는 (왜 있는지) 항상 의문이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정세균의 첫 번째 시험대는 원전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 야당도 총리 인준 청문회에서 이를 쟁점으로 삼을 태세다. 정세균은 원전 긍정론자다. 2006년 산자부 장관 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선 “원전은 공급 안정성, 친환경성, 경제성 측면에서 그 어느 에너지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고 밝혔다. 장관 임기 중 신월성원전 1, 2호기 기공식에서는 “원전이 국내 전력공급의 중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치사했다. 한 신문 기고에서는 “에너지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원자력은 에너지 안보와 환경 보호를 위한 중요한 대안”이라고 역설했다. 물론, 안전성·경제성·환경성 검증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균형’도 잊지 않았다. 분명히 현 정부의 막무가내 탈원전 기조와는 궤가 다르다.

그가 장관으로 일했던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원전 문제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차이 난다. 차세대 원전 APR+ 기술의 개발은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됐다. 전원이 끊겨도 3일간 버틸 수 있고, 10만년 당 1회라는 노심 용융 사고 확률을 100만년 당 1회 미만으로 낮춘 기술이다. 원래대로라면 2027년쯤 준공될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에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현 정부 들어 없던 일이 돼버렸다. 산자부 장관 정세균은 노 대통령과 함께 원전산업 수출을 위해 발로 뛰었다. MB 정부가 UAE 원전 수출을 성사시키자 정세균은 야당 대표이면서도 “획기적인 쾌거”라며 환영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한국 원전 산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원전만큼 문재인 정부의 맹목적인 지향을 드러내는 영역도 드물다. 가장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할 에너지 문제가 이념의 표지가 돼 버렸다. 비과학적 공포에 근거한 급진 환경주의자들의 반원전 프레임에 포획돼 수렁에 빠졌다. 환경 문제로 법석을 떨면서도 탄소 및 미세먼지 배출 ‘0’에 가까운 원전은 금기어로 묶여 버렸다. EU와 UN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마당이다. 그런데도 ‘탈원전’은 걸핏하면 ‘촛불 정신’을 들고나오는 핵심 지지층에 둘러싸여 한치도 허물 수 없는 아성이 돼버렸다.

꽉 막힌 상황이 정세균에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그의 실용성과 합리성이 돋보이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이념이 과학을 짓누르는 정권의 도그마를 깬다면 그의 도전은 성공이다. 여건이 나쁘지만은 않다. 문 대통령은 그를 지명하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대통령의 빚은 그에겐 자산이다. 그 자산을 잘 활용한다면 더 큰 꿈을 꿀 기회가 열릴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권 지지층에 얼굴을 붉혀야 할 수도 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미소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미스터 스마일’로만 머물면 다음 길은 없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