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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불가피한 윤석열의 문 대통령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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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직선거법 제57조5와 제57조의6은 매우 무거운 범죄를 규정하고 있다. 57조의5는 ‘당원 등 매수 금지’이고 57조의6은 ‘공무원 등의 당내 경선운동 금지’이다. 내용은 이렇다. 누구든지 당내 경선에서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할 목적으로 공사의 직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를 할 수 없다.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해 당내 경선운동을 할 수 없다. 공사의 직 제공은 단지 의사를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 5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공직선거법 57조5, 6 위반 의심 #한겨레신문이 결정적 진술 보도 #지방선거 때 당 대표는 추미애

한겨레신문은 12월 19일자에 2018년 지방선거 넉 달 전 한병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내 경선 라이벌이었던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경선 불출마를 권유하면서 고베 총영사 등 ‘다른 자리’를 권유했다”고 임동호씨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병도 수석이 청와대로 임동호씨를 불러 선거 판세를 분석한 문건을 들여다보며 ‘후보자가 되지 아니하게 할 목적으로’ 외교관이라는 ‘공직 제공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범죄 혐의의 행위 주체와 시간과 장소, 상황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한겨레신문 보도는 그 자체로 법정의 증거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임씨는 경선 불출마와 고베 총영사직을 바꾸자는 한병도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한병도와 임동호의 공직 거래가 불발되자 임종석 비서실장까지 나서 “미안하다”는 취지의 연락을 했다고 한다.

한병도의 공직 거래 사건이 있기 넉 달 전엔 임종석이 송철호를 청와대에서 만나 “대통령이 직접 후보 출마를 요청하면 부담이 되니 비서실장인 제가 요청을 드린다. 당내 다른 경쟁자인 A씨는 동서발전, B씨는 자리 요구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담긴 업무일지가 검찰에 의해 발견됐다. 업무일지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송철호 울산시장의 미팅에 동석했던 송병기 울산부시장이 작성했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도 빠지지 않았다. 조 수석은 “B씨를 움직일 카드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적혀 있다.

이로써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전직 비서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이 모두 공직선거법 57조의5와 6을 어긴 의혹이 또렷해졌다.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특정인의 당내 경선 출마를 종용했다면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당내 경선운동에 개입한 행위에 해당한다. 윤석열 총장의 검찰은 증거(송병기의 업무일지)와 진술(임동호의 한겨레신문 인터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옳다. 증거와 진술들은 일관되게 차례로 한병도, 조국, 임종석을 수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수사의 종착지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민정수석 등의 선거 개입 의심 행위를 문 대통령이 지휘하거나 보고받았는지, 아니면 이들이 대통령과 무관하게 움직였는지를 가리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면 검찰은 문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문 대통령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드러난다 해도 내란·외환죄를 범한 것이 아니기에 기소되지 않을 특권이 있다. 대통령의 헌법상 특권은 인정하되 범죄 유무는 가려놓을 필요가 있다. 불과 3년 전 전직 대통령도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의 결심에 따라 수사를 받아야 했다.

증거와 진술에 따라 검찰이 가려야 할 문제는 또 있다. 민주당의 개입 여부다. 지방선거 공천 때 청와대와 짜고 의도적으로 임동호 등 경쟁자를 낙마시키고 송철호를 단독으로 공천했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송병기의 업무일지엔 “중앙당과 청와대의 힘을 빌려 제거”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 대표는 얄궂게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고 당공천관리위원장은 윤호중 사무총장이었다. 조사는 불가피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공수처법의 처리가 어려워진 민주당 지도부가 특검을 궁리하는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검찰의 손발을 묶고 수사 방향을 다른 데로 틀고 싶은가 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바로잡습니다

◆ 2019년 12월 23일자 34면 ‘불가피한 윤석열의 문 대통령 조사’라는 제목의 ‘전영기의 시시각각’ 칼럼 중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이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중앙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는 내용은 경기도당 공천관리위원장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아울러 당시 송철호 울산시장 공천에 윤 사무총장이 개입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