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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운명의 열흘 시작됐다···서울 온 비건 판문점 회동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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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이 ‘도발 선물’을 위협한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두고 남·북·미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북한이 또 서해 위성발사장(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감행한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부장관 지명자)가 15일 서울에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비건 대표를 직접 만나 북·미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

북측에 ‘트럼프 친서’ 전달할 수도 #크리스마스 도발 이번주 분수령 #북한 또 “중대 시험” 미국 압박 #문 대통령 오늘 비건과 북핵 논의

위태로운 연말·연초를 향해 가는 한반도 정세가 반전의 기회를 맞을지는 비건 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북·미 접촉이 성사될지에 달렸다. 대미 소식통은 “비건 대표가 방한 기간 중 판문점에서 만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북측에 이미 던져놓고 한국에 온 것으로 안다”며 “다만 미 측도 실제 만남이 이뤄질지에 대해선 ‘상황이 어렵다(tough)’고 하더라”고 전했다.

1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비건 대표는 ‘최근 북한의 일련의 행동을 어떻게 보느냐’ ‘판문점에서 북한과 접촉할 계획이 있느냐’ 등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은 채 떠났다. 그는 앞서 14일 출국 직전 공항에서는 판문점 접촉 가능성 관련 질문에 “지금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미국의 방침은 변한 게 없으며 북한도 그것을 알고 있다”면서다. 북한이 그은 연말 시한에 연연하지 않고 비핵화 대화 요구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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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일정으로 방한한 비건 대표는 16일부터 일정에 본격 돌입한다.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을 예방하고,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약식 회견을 연다.

곧이어 청와대를 예방한다. 통상 그를 만나 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나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직접 그를 접견하는 것은 그만큼 현재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이 엄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례적 접견을 통해 청와대로선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을 다시 부각하는 한편, 만일 상황이 악화하더라도 ‘파국을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다’는 정치적 명분도 쌓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비건 대표를 만나 한반도 정세를 평가하고, 북·미 사이에서 가능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은 대미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은 14일 오후 3시20분쯤 담화를 내고 “13일 22시41분부터 48분까지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이 또다시 진행됐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믿음직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한층 강화하는 데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7일 ‘중대한 시험’ 이후 엿새 만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김정은이 친서 보내 “지금은 부담” 분석도 

7시간여 뒤 북한군 서열 2위인 박정천 총참모장도 “최근 진행한 국방과학연구시험의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위협을 확고하고도 믿음직하게 견제·제압하기 위한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산실로 알려진 국방과학원이 두 번째 ‘중대한 시험’을 하고, 박 총참모장이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까지 언급한 것은 ‘ICBM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미국을 향한 경고 메시지다.

다만 박 총참모장은 “우리는 대화도, 대결도 낯설어하지 말아야 한다”며 대화도 언급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미가 연내 한 번은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진전이 없으면 결국 북한은 예고대로 노동당 정치국 전원회의를 열어 ‘새로운 길’을 천명하고 이후 인공위성 발사 또는 ICBM 도발 수순으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친서 외교를 통한 국면 반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대표를 급파한 건 북한과 대화하려는 데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북측에 전달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친서는 지금 쓰기엔 부담스러운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오히려 북한이 ‘미국이 대화를 구걸한다’고 역공을 펼칠 구실을 주는 것이 될 수도 있다”며 “또 정말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려 한다면 북·미 간 접촉이 확실치도 않은 비건 대표의 방한이 아니라 뉴욕 채널을 활용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호·백민정·이유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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