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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김성훈 61번 달겠다는 '형' 박상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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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투수 고 김성훈 선수의 추모공간이 마련된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프리랜서 김성태

한화 이글스 투수 고 김성훈 선수의 추모공간이 마련된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프리랜서 김성태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박상원(25)은 올 시즌까지 등번호 58번을 사용했다. 박상원은 최근 구단에 61번을 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최근 세상을 떠난 후배 김성훈의 번호다.

박상원과 김성훈은 2017년 드래프트 입단 동기다. 해외 유턴파 김진영(27)이 2차지명 1라운드, 김성훈이 2라운드, 박상원이 3라운드에 지명됐다. 대졸인 박상원이 네 살 위지만 데뷔 첫 해 함께 재활군에서 운동을 하면서 친해졌다. 박상원은 "입단 동기 중 진영이 형까지 셋만 남았다. 성훈이랑은 성격이 비슷하고, 나이 차도 크지 않아 잘 어울렸다"고 했다. 올 시즌엔 박상원의 글러브를 김성훈이 쓸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박상원은 "내 손엔 잘 맞지 않아 성훈이에게 줬다. 올시즌 뒤 글러브를 기부할 생각이라 성훈이에게 1년만 쓰고 달라고 했다. 아직도 차 트렁크에 있다"고 했다.

한화 투수 박상원은 "성훈이 글러브를 아직 김민호 코치님께 드리지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뉴스1]

한화 투수 박상원은 "성훈이 글러브를 아직 김민호 코치님께 드리지 못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뉴스1]

하지만 이제 둘은 함께 운동할 수 없다. 지난달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김성훈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박상원은 "처음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현실같지 않았다. 빈소에 가니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성훈의 아버지 김민호 KIA 코치는 박상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박상원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미안하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지난해 7월 22일 김성훈의 프로 첫 승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남아서였다. 당시 선발등판한 김성훈은 4-1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불펜 난조로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프로에서 1승을 거두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났다. 박상원의 소셜미디어엔 아직 흔적들이 남아 있다.

박상원은 친구같았던 동생을 잊지 않기 위해 61번을 달기로 했다. 박상원은 "그 전까지 달던 58번은 사실 내가 원해서 쓴 건 아니었다. 닮고 싶은 (정)우람(57번)이 형 바로 다음 번호라는 데 의미를 부여해서 정을 붙였다"며 "많진 않지만 내 등번호를 유니폼에 새긴 팬들이 있다. 번호를 바꾸면 그분들에게 죄송하니까 3년 동안 쭉 썼다"고 말했다. 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엔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런데 이번 일이 생기면서 61번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성훈에게 미안함을 표현한 박상원의 소셜 미디어. [박상원 SNS]

김성훈에게 미안함을 표현한 박상원의 소셜 미디어. [박상원 SNS]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혹시나 김민호 코치나 김성훈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상원은 "구단에서도 그런 부분을 걱정하셔서인지 비워두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도 하셨다"고 했다. 그는 "잠시 비워둔다 해도 몇 년 뒤 내가 군대에 갔을 때 누군가 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럴 바엔 내가 쓰고 싶었다. 그래서 구단에 부탁드렸다"고 했다.

박상원의 마지막 말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다짐 같았다. "이 번호를 달고 못하면 안 되겠죠. 그런데 야구는 어떻게 될 지 몰라요. (불펜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지난 해는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잘했고, 조금 부진한 올해가 제 실력일 수도 있어요. 더 나아져야죠. 성훈이를 생각해서 열심히 할 거에요."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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