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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교수 '정직 3개월' 재심의 사유 감춘 전북대 총장, 왜

중앙일보

입력

김동원 전북대 총장(가운데)과 보직 교수들이 지난 7월 9일 학내 진수당에서 최근 잇따라 발생한 교수들의 비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올해 전북대는 교수들의 사기와 강요, 성추행, 음주운전 사고, 논문 자녀 등재, 총장 선거 개입 등 비위가 잇따라 불거져 내홍을 겪었다. [연합뉴스]

김동원 전북대 총장(가운데)과 보직 교수들이 지난 7월 9일 학내 진수당에서 최근 잇따라 발생한 교수들의 비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올해 전북대는 교수들의 사기와 강요, 성추행, 음주운전 사고, 논문 자녀 등재, 총장 선거 개입 등 비위가 잇따라 불거져 내홍을 겪었다. [연합뉴스]

전북대 징계위원회가 동료 외국인 여교수를 성추행한 교수에 대해 정직 3개월을 결정했지만, 총장이 이를 수용하지 않고 교육부에 재심의를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북대 측이 재심의 사유에 대해 함구하면서 "총장이 가해 교수와 그를 감싸는 일부 동료의 반발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檢 '외국인 女교수 추행' 교수 기소유예 #징계위, 수사 결과 등 살펴 중징계 의결 #김동원 총장, 교육부에 재심의 요청키로 #학교 "징계위 독립성 해칠라" 사유 함구 #시민단체 "동료 교수들 눈치 본다" 지적

전북대는 12일 "김동원 총장은 외국인 객원교수 B씨(28·여)를 성추행한 인문대 소속 A교수(55)에게 학교 징계위가 결정한 정직 3개월에 대해 양정(징계 수위) 등 전체적인 상황을 판단해 교육부의 재심의를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징계위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A교수에게 지난달 말 정직 3개월 처분을 의결했다.

검찰에 따르면 B교수는 지난 4월 A교수를 전주 덕진경찰서에 고소했다. A교수는 3월 29일 오후 B교수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 뒤 숙소인 학교 기숙사에 데려다 주겠다며 B교수를 본인 승용차에 태웠다. A교수는 차 안에서 B교수를 억지로 끌어안고 양볼에 입을 맞춘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6월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A교수를 전주지검에 넘겼다. A교수는 검찰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은 지난 9월 20일 보호관찰소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학교 징계위는 A교수의 검찰 수사 기록과 피해자 진술, 검찰 처분서 요지 등을 살펴 징계를 내렸다. A교수에 대해서는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따로 진술 기회를 줬지만, 피해자인 B교수는 부르지 않았다. "검찰로부터 혐의가 나오는 수사 결과를 통보받은 데다 A교수도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에 피해자를 다시 조사하면 고통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게 전북대 측 설명이다.

전북대 대학본부 전경. 김준희 기자

전북대 대학본부 전경. 김준희 기자

앞서 전북대는 검찰로부터 'A교수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통보를 받은 지 20일 만인 지난 9월 30일 직위해제를 취소하고, 10월 1일자로 소속 학과로 발령 냈다. B교수는 A교수의 학교 복귀를 강력히 반대했지만, A교수는 교수 직위 회복 후 급여를 그대로 받고 있다.

전북대는 아직 A교수 징계 재심의 요청 공문을 교육부에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전북대에서 아직까지 공문으로 접수된 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원에 대한 징계는 대학에서 하고, 그것에 대해 (총장이) 징계 수위가 낮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하면 교육부에 재심의 요청을 할 수 있다. 징계가 무거워 재심의를 요청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전북대 측은 "징계가 확정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재심의 요청 사유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종 결정도 아닌데 총장 시각을 부각하는 건 징계위의 결정을 훼손할 수 있다"는 취지다.

전북대 관계자는 "아직 교육부 재심의 결과가 안 나온 상태에서 총장이 징계위 결정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밝히는 것은 외압으로부터 독립된 징계위에 대한 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징계위 결정을 바라보는 총장의 시각이 있겠지만, 징계 수위가 너무 낮다거나 너무 높다고 말하면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에서 '여론몰이를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며 "징계위 결과는 원래 비밀에 부쳐야 하는데 외부에 새나가면서 외려 학생들의 불안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전북대 내부에서는 A교수의 교단 복귀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지만, 일부 교수를 중심으로 "A교수가 잘못은 했지만, 교수 직위까지 박탈하는 건 지나치다"는 동정론도 있다. 이 때문에 "학교 최고 결정권자인 총장이 해당 사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숨긴 채 동료 교수들의 눈치만 살핀다"는 불만이 나온다. 전북대 4학년 이모(25)씨는 "그동안 교수들은 동료가 비리를 저지르면 애초에 이런 말 자체가 안 나오게 자기들끼리 쉬쉬한다"며 "문제가 불거져도 학교 측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거나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니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말만 반복한다"고 말했다.

A교수를 비롯해 학내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는데도 전북대가 엄벌 의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자 시민·사회단체가 나섰다. 전북여성단체연합과 전북대학교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등은 이날 대학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히 성추행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내리고 성폭력에서 안전한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이창엽 사무처장은 "정직 3개월이라는 징계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적정한지 의문스럽다"며 "총장이 이런 중대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교수 사회와 학내 구성원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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