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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도 않고 안된다…" 故김우중 육성에 흐느낀 대우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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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별관에서 엄수된 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결식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에 대한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별관에서 엄수된 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결식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에 대한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육성 사이로 조용한 흐느낌이 들렸다. 12일 오전 8시,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대강당에서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김 전 회장의 영결식이 열렸다. “소박한 장례를 치르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영결식장엔 유가족과 친인척,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만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2000여명이 넘는 조문객이 몰리자 아주대병원과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대강당 복도에 스크린을 설치해 영결식을 생중계했다.

이날 영결식은 김 전 회장의 삶을 되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도전과 창조를 강조한 김 전 회장의 육성이 담긴 언(言)과 어(語) 영상이 흘러나오자 영결식장엔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다. 바깥에 머물던 조문객도 숨을 죽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독립해서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어요. 내 생각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쉽게 얘기해서 미쳐서 돌아가야 도에 달하고. 도에 달하면 보이는 것이 많고 보이는 게 많으면 창의적인 게 더 많이 나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사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사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대우의 사훈인 창조・도전・희생 이 세 가지에는 우리의 진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는 세계로 나갔고, 시도해보지 못한 해외 진출을 우리가 처음으로 해냈습니다.”

영상 말미에 김 전 회장이 '대우의 노래' 가사를 읽은 장면(1992년 3월 22일 대우창업 25주년 기념사)이 나올 때는 훌쩍이는 소리가 더 커졌다.

김 전 회장의 육성은 저성장 기조에 접어든 한국 경제와 기업에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졌다. 모니터 속 김 전 회장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우리끼리 경쟁하며 살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밖으로 나가자. 국제관계에서 우리가 밀면 개척자가 되지만 수세에 몰리면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사업가에게 “세계를 보되 현지의 눈으로 보라, 절실해야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별관에서 엄수된 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결식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별관에서 엄수된 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결식에서 추모객들이 헌화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대우 마지막 사장이었던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은 조사(弔詞)를 통해 “회장님은 위대한 삶을 사셨다. 35만 대우가족과 전 국민이 기억하고 기꺼이 인생좌표로 삼기에 충분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장 회장은 “회장님이 주장하신 창조·도전·희생의 대우 정신은 국가발전과 후대의 번영을 위한 주춧돌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그룹 해체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명예회복 대신 젊은이들을 키우는 일에 여생을 바치셨다. 평생을 일만 하신 우리 회장님. 부디 영생의 안식처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며 여러 차례 눈물을 훔쳤다.

"젊은이들의 우상이고 영웅" 곳곳에서 고인 추모

고인을 가까운 곳에서 보필했던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도 추도사를 통해 “당신은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우리 젊은이들의 우상이고 영웅이셨다”며 “결제를 받으러 사무실에 가면 (고인이) 걸상을 붙들고 쪽잠을 자고, 시간을 아끼려고 샌드위치를 먹으며 새벽 회의를 했다”며 김 전 회장을 회상했다. 그는 “회장님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힘든 일 다 내려놓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라”고 말했다. 추모사가 끝난 뒤에는 장례절차에 따라 천주교식 종교행사가 진행됐다. 이어 참석자 전원이 '대우 가족의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유족 대표로 영결식장 앞으로 나온 김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은 “항상 바쁘시고 자주 옆에 계시진 않았지만 늘 자랑스러운 아버지셨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며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나자 김 전 회장의 영정은 손자의 손에 들려 운구 차량으로 이동했다.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차남 김선협 부회장, 삼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등이 이 뒤를 이었다.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에서 거행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발인식에서 운구차 행렬이 아주대학교 정문을 지나 장지로 이동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에서 거행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발인식에서 운구차 행렬이 아주대학교 정문을 지나 장지로 이동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운구 차량은 아주대학교 본관을 한 바퀴 돌며 고인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등교하던 학생 몇몇은 발걸음을 멈춰 운구차를 지켜봤다. 이번 장례가 치러진 아주대는 김 전 회장이 1977년 대우실업 사장이었을 당시 사재를 출연해 대우학원을 설립하고 인수한 대학이다. 첫 조문객도 박형주 아주대 총장과 교직원들이었다. 10일부터 전날까지 빈소를 찾은 조문객만 1만여명에 이른다.  김 전 회장의 장지는 고인의 어머니가 모셔진 충남 태안군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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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강기헌·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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