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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황 견제론에 투사형 사령탑 기대감…심재철 깜짝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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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에 5선의 심재철 의원(왼쪽), 정책위의장에 3선의 김재원 의원(오른쪽)이 9일 선출됐다. 황교안 대표 가 신임 원내 사령탑과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에 5선의 심재철 의원(왼쪽), 정책위의장에 3선의 김재원 의원(오른쪽)이 9일 선출됐다. 황교안 대표 가 신임 원내 사령탑과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 더불어민주당과 군소 야당들에 의한 예산안 강행 처리란 파국을 향해 가던 여의도가 돌연 멈췄다. 9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심재철 원내대표가 전임 나경원 원내대표의 199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요구안을 일단 거둬들이고,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내에 선거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안건을 본회의에 올리지 않기로 약속하면서다. 일시적 휴전 성격이지만 그 돌파구는 심재철 원내대표의 선출로부터 시작됐다.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막전막후 #선거 전날까지 초·재선 우세론 #뚜껑 여니 5선 심재철+3선 김재원 #심 “선수·지역으로 차별해선 안 돼” #김 “검찰 조사 때 욕실에 노끈 준비”

“기호 4번 심재철, 김재원 조, 52표.” 이날 오전 신임 원내대표 선출을 위해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은 여상규 의원의 발표에 장내에선 탄성이 나왔다. 이날 한국당은 심재철(안양 동안을·5선)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심 의원과 한 조를 이뤄 출마한 김재원(상주-군위-의성-청송·3선) 의원를 신임 정책위의장으로 뽑았다.

황교안 측, 김선동 후보 지원사격

의원들의 ‘탄성’에서 드러나듯 일종의 ‘이변’이었다. 유기준(부산 서-동·4선)·박성중(서울 서초갑·초선), 강석호(영양-영덕-봉화-울진·3선)·이장우(대전 동·재선), 김선동(서울 도봉을·재선)·김종석(비례·초선) 조와의 경쟁이 치열했던 데다, 특히 당내에선 세대교체와 ‘물갈이’론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당초 출마를 선언했던 윤상현 의원도 7일 “초·재선을 지지하겠다”며 하차하기도 했다. 또 일각에선 내년 총선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려는 황교안 대표 측이 중진보다는 재선 의원의 당선을 선호한다는 말도 돌았다. 이 때문에 선거 전날까지만 해도 김선동 의원 측이 근소하게 우세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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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의식한 듯 심 의원은 ‘쇄신’보다 ‘존중’을 강조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인적 쇄신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새로운 인물이라도 그 사람이 각 지역구에서 이길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의원들께서 선수로, 지역으로 (공천에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황교안 대표께 직언하겠다”고 했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황심(黃心)’ 논란에 대해 “황심은 절대 중립이라고 확신한다”며 “황심을 거론하며 표를 구하는 것은 당을 망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러닝메이트로 나선 김재원 의원은 자신의 재판 과정을 회고했다. 현재 김 의원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년 전 이맘때, 제 딸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날 저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말문을 연 그는 “수없이 이어지는 조사와 재판에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노끈을 욕실에 넣어두고 언제든지 죽을 때는 망설이지 않으려고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투명인간처럼 살다가 주변 식당에서 낙서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내 편이 돼주지 않는데 누가 내 편이 돼주겠어’”라며 “우리가 늘 스스로에게 회초리만 드니까 국민도 우리를 보고는 서로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본다. 혁신, 쇄신을 해도 우리 스스로를 존중해야 국민도 우리 말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원 당내 대표적 꾀주머니”

자유한국당이 9일 청와대 분수대광장에 설치했던 ‘투쟁 텐트’를 철거했다. 한국당은 대신 토요일인 14일 ‘친문 3대 농단’으로 규정한 각종 의혹을 규탄하는 장외집회를 열기로 했다. [뉴스1]

자유한국당이 9일 청와대 분수대광장에 설치했던 ‘투쟁 텐트’를 철거했다. 한국당은 대신 토요일인 14일 ‘친문 3대 농단’으로 규정한 각종 의혹을 규탄하는 장외집회를 열기로 했다. [뉴스1]

1차 개표 결과 심재철·김재원 조가 39표를 얻었고, 강석호·이장우 조와 김선동·김종석 조가 28표, 유기준·박성중 조가 10표였다. 유기준-박성중 조를 제외한 세 조가 결선에 올랐고, 심재철·김재원 조의 표는 더 늘어났다(52표).

당내에선 이번 결과를 두고 물갈이론에 대한 견제 심리란 분석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능력이나 경력은 고려되지 않고 무조건 선수를 낮춰 초·재선 세상이 되면 국회가 잘 돌아간다는 프레임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심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 만큼 공천 분위기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황교안 리더십’에 대한 불편함이란 해석도 있다. 황 대표 측 일부 인사가 몇몇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김선동 의원 측에 대한 지원사격을 하면서 되레 당내 ‘친황’ 견제 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황 대표 측과 밀접한 관계여서 심재철-김재원 조가 ‘반황’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해석도 있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의 역할도 상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김 정책위의장의 솔직한 토로뿐 아니라 전략통으로서 기대치가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패스트트랙은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수사를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전략통으로서의 강점을 부각했다. 대구·경북의 한 의원은 “그동안 당내 의원들이 답답해하고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날 결선에서 얻은 표 중 20표가량은 현장에서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당선 직후 “오늘 당장 여당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을 찾아가 예산안 지금 추진하는 걸 ‘스톱’하라, ‘4+1 협의체’는 안 된다, 같이 협의하자고 요구하겠다”고 말했고, 실제 그리 했다. 심재철-김재원 조에 대해 한 재선 의원은 “투쟁 강도가 결코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김 정책위의장도 당내 대표적 ‘꾀주머니’다. 보통 의원들이 생각지 못하는 수를 많이 던지기 때문에 비교적 원칙론자였던 나경원 원내대표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도 “심재철 원내대표도 만만치는 않지만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정말 까다로운 상대가 될 것이다. 향후 여야 협상이 매끄럽지만은 않을 것”(한 관계자)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성운·성지원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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