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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언덕의 격돌', 조슈아 6개월만에 복싱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되찾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디펜딩 챔피언 앤디 루이즈가 도전자 앤서니 조슈아의 라이트 펀치를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디펜딩 챔피언 앤디 루이즈가 도전자 앤서니 조슈아의 라이트 펀치를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앤서니 조슈아(30)가 앤디 루이즈 주니어(30)에게서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았다.

[서소문사진관]

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디리야 경기장에서 펼쳐진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에서 영국의 앤서니 조슈아는 멕시코의 디펜딩 챔피언 앤디 루이즈를 판정으로 물리치고 챔피언 벨트를 되찾아 왔다. 이로써 앤서니는 그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겼던 앤디 루이스에게 설욕했다.

영국의 앤서니 조슈아가 앤디 루이즈를 물리치고 환호하고 있다.[AP=연합뉴스]

영국의 앤서니 조슈아가 앤디 루이즈를 물리치고 환호하고 있다.[AP=연합뉴스]

두 사람의 첫 격돌은 지난 6월 1일 미국 복싱의 성지인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렸다. WBAㆍIBFㆍWBOㆍIBO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으로 열린 이 경기에서 무패 헤비급 챔피언 앤서니 조슈아는 앤디 루이즈 의 핵 펀치를 이겨내지 못하고 커리어 사상 첫 번째 패배를 기록하며 타이틀을 잃었다. 7라운드 TKO 패였다.

3라운드에 첫 다운을 빼앗기며 흔들리던 조슈아는 5라운드, 7라운드에 또다시 무너졌다. 조슈아의 상태를 확인한 심판이 KO로 경기를 끝냈다. 공식 기록은 7라운드 1분 33초 TKO. 루이스는 세계 최강으로 불리는 조슈아를 무너뜨린 첫 번째 복서로 기록됐다.

이날 패배로 조슈아의 통산 전적은 23전 22승 1패가 됐다. 하지만 1패를 안긴 루이즈를 반년 만에 다시 물리치고 통합 챔피언 자리에 다시 올랐다.

앤디 루이즈(오른쪽)이 앤서니 조슈아에게 펀치를 먹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앤디 루이즈(오른쪽)이 앤서니 조슈아에게 펀치를 먹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앤디 루이즈는 운동선수 같지 않은 몸매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몸으로 기민하게 핵 펀치를 구사하는 모습은 신기했다. 그는 지난 6월 조슈아를 물리친 뒤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모든 내가 3라운드에서 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루이즈는 “엄마 사랑해요. 우리 우리의 삶은 바뀔 거에요. 더는 고군분투하면서 살 필요가 없어요. 신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앤디 루이즈(왼쪽)와 앤서니 조슈아가 주먹을 교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앤디 루이즈(왼쪽)와 앤서니 조슈아가 주먹을 교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앤서니 조슈아가 앤디 루이즈를 물리치고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앤서니 조슈아가 앤디 루이즈를 물리치고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슈아는 프로 데뷔 전 아마추어 경력이 화려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슈퍼헤비급 금메달리스트다.

현재 세계 프로복싱 헤비급 최고의 흥행 복서로 꼽히기도 한다. 2017년 세계 프로헤비급 챔피언을 장기 양분 집권한 우크라이나의 클리츠코 형제 중 블라디미르를 상대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KO 승을 거두었다. 2010년대 후반 헤비급을 대표하는 세 명을 꼽으라면 디온테이 와일더, 타이슨 퓨리, 앤서니 조슈아다. 셋 중 테크닉과 파워, 디펜스 등을 종합하면 조슈아가 가장 밸런스가 좋다.

6월의 앤디 루이즈 전에서 보았듯 약점도 있다. 기본인 가드가 무너질 때가 있다. 턱이 강하지 않아서 수준 높은 복서의 일격을 턱에 허용하면 데미지가 큰 것도 약점이다.

앤디 루이즈는 6개월만에 조슈아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AP=연합뉴스]

앤디 루이즈는 6개월만에 조슈아에게 타이틀을 빼앗겼다. [AP=연합뉴스]

계체량에서 지난 6일 만난 루이즈(왼쪽)과 조슈아. [AP=연합뉴스]

계체량에서 지난 6일 만난 루이즈(왼쪽)과 조슈아. [AP=연합뉴스]

앤서니 조슈아(오른쪽)와 앤디 루이즈가 지난 6일 계체량에서 만나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중동지역에서 열린 첫 헤비급 타이틀매치였다.
경기는 '모래 언덕의 격돌'로 불렸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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