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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리더 필요" GS 허창수 용퇴···막내동생에 회장직 넘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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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생각해왔다.”

허창수(71) GS그룹 회장은 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자격으로 참여한 ‘한·산둥성(중국) 경제통상 협력 교류회’ 행사였다. 그는 이날 오전 GS그룹 회장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허 회장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홀가분한가”라는 질문에 “그렇죠”라며 웃었다. 평소 스타일대로 그의 답변은 짧았다. 전경련 회장직은 이어갈 뜻도 내비쳤다. 허 회장은 “지금 하고 있는 건 열심히 해야죠”라고 말했다. 4세 경영 본격화에 대한 질문에는 “아뇨, 그건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

 허 회장은 2004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GS그룹의 초대 회장에 취임해 지난 15년간 그룹을 이끌어왔다. 신임 회장에는 허창수 회장의 막내 동생인 허태수(62) GS홈쇼핑 부회장이 선임된다. 허 회장 퇴진과 함께 발표된 GS그룹 인사에서는 60년대생 전문경영인과 70년대생 오너가(家) 4세 등이 사장단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창수 GS 회장. [사진 GS]

허창수 GS 회장. [사진 GS]

 3일 GS그룹에 따르면, 허창수 GS 회장은 그룹 정기 임원인사를 앞두고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주)GS 대표이사 회장과 이사회 의장에서 모두 물러난다. 허 회장은 그룹 회장 임기가 2년 이상 남았지만, 디지털 혁신을 이끌 새로운 리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용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날 허 회장은 “지난 15년간 ‘밸류 넘버 원 GS(Value No.1 GS)’를 일구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기반을 다진 것으로 나의 소임은 다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은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해 GS가 전력을 다해 도전하는 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시기”라며 “혁신적 신기술이 경영환경 변화를 가속화시키는데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언제 도태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지금이 새 활로를 찾아야 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GS 관계자는 “허 회장이 디지털 혁신을 역동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리더에게 자리를 넘겨야 할 때라는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말했다. 다만, 허 회장이 최대 주주로 있는 GS건설의 회장직은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허 회장이 4연임 중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계속 맡을 것으로 보인다.

'허창수 체제' 출범 15년, GS그룹의 성장. 그래픽=신재민 기자

'허창수 체제' 출범 15년, GS그룹의 성장. 그래픽=신재민 기자

 허 회장은 GS그룹을 15년 만에 매출 68조원의 재계 8위 그룹으로 키워낸 안정적인 리더로 평가받는다. 2004년 LG와 잡음 없이 계열분리를 마무리 지은 허 회장은 2005년 GS그룹 초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계열사 15개에 자산 18조원, 매출 23조원짜리 그룹을 15년 만에 계열사 64곳, 자산 63조원, 매출 68조원의 기업으로 키웠다. GS그룹의 지주회사인 (주)GS의 이사회 의장이자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각 사업자회사와 출자회사에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 전문경영인 중심의 책임 경영을 강조했다.

 특히 허 회장은 에너지ㆍ유통서비스ㆍ건설 등 3개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해 지속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GS그룹의 에너지 중심 사업형 지주사인 GS에너지를 출범시켜 에너지 사업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신재생에너지ㆍ대체에너지 등 에너지 관련 신규 사업을 육성했다. 유통사업에선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 선택과 집중으로 경쟁력을 키웠다. GS리테일의 백화점과 마트 부문을 매각하고 편의점과 슈퍼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GS홈쇼핑은 인도ㆍ중국ㆍ태국 등 해외로 진출했다. 건설사업의 GS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자이(Xi)를 브랜드로 안착시키고 최근 AI(인공지능)을 결합한 홈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막 올린 GS그룹 3,4세 경영시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막 올린 GS그룹 3,4세 경영시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허 회장은 LG그룹 공동창업주인 고(故)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1977년 LG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 LG그룹 입사 후 LG상사 전무와 LG화학 부사장, LG전선ㆍLG건설 회장을 지냈다.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 [사진 GS]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 [사진 GS]

 내년 이사회를 통해 신임 회장에 선임될 허태수 회장은 고 허준구 회장의 5남으로 허창수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허 신임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석사(MBA)를 졸업하고 미국 컨티넨탈 은행에 근무하다가 1988년 LG증권에 입사했다. 2007년 GS홈쇼핑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GS홈쇼핑 성장을 이끌었다. 내수 산업에 머물러 있던 홈쇼핑의 해외 진출과 모바일 쇼핑 사업 확장을 잇달아 성공시켜 차세대 GS 그룹 리더로 인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태수 회장은 2006년 연간 취급액 1조8946억원이던 GS홈쇼핑 실적을 지난해 4조2480억원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TV 홈쇼핑에 의존하던 사업구조를 모바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GS그룹 초대 회장의 용퇴로 GS 3, 4세 경영 승계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이번 인사에서 오너가 4세 사장이 한 명 늘었다. 허윤홍 GS건설 신사업추진실장 부사장이 GS건설 신사업부문 대표 겸 사업관리실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허 사장은 허창수 회장의 장남이다. 지난해 말엔 GS칼텍스 허세홍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해 4세 경영 시대의 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전무에서 승진한 허준홍 GS칼텍스 부사장(윤활유 사업부문)도 4세다. 허세홍 사장과 허준홍 부사장은 각각 허동수 GS칼텍스 회장과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아들이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아들 허서홍 GS에너지 전무(경영지원본부장)도 GS그룹 내에서 에너지 부문 4세 경영자다.

 이날 허창수 회장의 셋째 동생 허명수(64) GS건설 부회장도 용퇴를 결정했다. 1981년 LG전자 사원으로 입사한 허 부회장은 2002년 GS건설(당시 LG건설)로 이동해 2013년 6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허 부회장은 앞으로 GS건설 상임고문을 맡을 예정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30, 3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전기 스쿠터 혁신 기업 고고로(Gogoro)를 찾아 전기 스쿠터를 시승하고 있다. [사진 GS그룹]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30, 3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전기 스쿠터 혁신 기업 고고로(Gogoro)를 찾아 전기 스쿠터를 시승하고 있다. [사진 GS그룹]

 허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실리추구로 압축할 수 있다. 차량이 몰릴 것 같으면 저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하철로 이동하는 그다. GS그룹 회장으로서 마지막 행보는 지난 10월 대만에서 이틀간 열린 그룹 사장단 회의였다. 허 회장은 전기 스쿠터 혁신 기업 고고로(Gogoro)를 찾아 전기 스쿠터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 이런 모습은 동행한 사진사의 렌즈에 잡혔다. 허 회장은 “GS가 살아남기 위해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바이오 등 신기술을 앞세워 실리콘밸리의 꿈을 이루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대만의 혁신기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신 없이 GS그룹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GS는 이번 사장단 회의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 투자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GS가 해외에 직접 벤처 투자법인을 세우는 건 처음이다.

 어려운 자리도 마다치 않았다. 올해 37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하면서는 재계 맏형을 자처했다. '전경련 패싱'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난 정권을 거치면서 전경련의 위상은 하락했다. 재계에선 “허 회장이 앞장서 총대를 멨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1년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허 회장은 올해까지 네 차례 연임하면서 10년 동안 전경련을 이끈 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같이 전경련 장수 회장에 올랐다.

 그동안 허 회장은 분기마다 그룹 임원을 불러모아 경영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는 메시지를 던져 왔다. 그는 고전에 실린 문구를 종종 인용하곤 했다.
“‘기본이 바로 서면 길은 절로 생긴다(本立而道生)’는 논어의 구절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하며 우리가 가진 역량을 강화하는 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지난 10월 4분기 GS 임원 모임)
“‘안대건곤소 심고대악비’(眼大乾坤小 心高岱岳卑 : 안목이 크면 천지가 작아 보이고, 마음이 높으면 태산이 낮아 보인다·조선 후기 학자 이상정(李象靖)의 문집 대산집(大山集) 중)라는 글귀처럼 항상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해 지금보다 나은 실력을 갖추도록 노력하면서, 이 과정을 구성원과 공유해 조직 전체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지난 2월 GS 신임 임원과의 만찬)

박수련·임성빈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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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 김호성 ▶부사장 박영훈 ▶전무 김원식 우재원 ▶상무 이종혁 윤선미 김준완
◆GS글로벌 ▶사장 김태형 ▶전무 유장열 ▶상무 김상윤 김성욱
◆GS건설 ▶부회장 임병용 ▶사장 허윤홍 ▶부사장 김규화 ▶전무 김종민 박춘홍 박용철 ▶상무 강성민 박영서 김동진 김하수 유현종 김민종 박준혁 안도용
◆자이S&D ▶대표이사 전무 엄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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