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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은 검찰총장 이름도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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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런던에서 지켜보니 지난 몇 달간 한국 뉴스는 조국과 윤석열로 뒤덮였다. 일본과 마찰도 잊힐 정도였다. 정당 대표나 원내대표 외에 정책위의장이나 사무총장의 이름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정부가 임명한 고위공무원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름은 모르는 이가 드물 것 같다. 특파원으로 지낸 3년 동안 영국에서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인사의 이름을 주요 보도에서 본 적이 없다. 검찰총장격인 맥스 힐은 그림자 같은 존재다.

거리에서 만난 영국인들도 아는 이가 없었다. 27살 핀테크 전문가 케이트는 “지난해인가 교체됐다는 건 알지만 이름은 모른다. 기소전담 기관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35살 수습 의사인 잭도 “누가 검찰의 책임자인지 모른다”며 “혹시 기소된 적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자기 사건 담당자 외에 총장은 모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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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을 모르는 이유는 영국에서 수사는 경찰이 맡기 때문이다. 주요 사건의 수사 결과는 각 지역 경찰 책임자가 발표한다. 영국의 검찰에 해당하는 크라운기소서비스(CPS·사진)는 수사 지휘도 할 수 없다. 경찰에 증거 보강을 위한 추가 조사를 요청할 수만 있다. 윤석열의 유명세는 한국 검찰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소독점권과 수사권을 가진 공룡인 점과 무관치 않다.

선출되지 않은 검찰총장이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할 소지가 있다.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던 시기에 조국 후보자 가족에 대한 공개수사를 시작했다. 그는 국회에서 “이런 사건은 제 승인과 결심 없이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의혹 제기에는 한계가 따르는데, 검찰이 수사로 개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앞으로도 개각이 있을 텐데, 의혹이 제기되는 후보자에 대해 검찰은 수사를 할까 안 할까. 수사한다면 검찰이 판관이 되는 셈이고, 수사하지 않는다면 조국만 표적 수사했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윤 총장은 세월호 재수사도 지시했다. 요구가 있던 터라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 세월호를 수사한 이전 정부 검찰에도 총장이 있었다. 윤석열의 재수사 지시는 당시 총장이 부실을 방치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검찰총장이 영웅으로든, 역적으로든 유명세를 타는 사회여선 곤란하다. 윤석열이 이름을 부르면 꽃이 되는 사회여선 안 된다. 한국은 영국처럼 선거로 뽑힌 이들이 국민을 대신해 나라를 운영하는 국가다. 정치인들이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개혁 방안을 협의해 처리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일이자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는 일이다.

김성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