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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상님들, 홍콩을 좀 보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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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도쿄총국장

서승욱 도쿄총국장

“중국 공산당은 당신 정부에 침투할 것이다. 중국 기업은 당신의 정치성향에 개입할 것이다. 중국은 당신네 나라를 위구르처럼 착취할 것이다. 깨어 있어라. 아니면 우리의 다음이 되던가.”

시위대가 홍콩 이공대에 남겼다는 오싹한 글귀를 SNS에서 봤다. 홍콩을 보며 중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 이들이 많을 것이다.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말의 무게감도 새삼 느끼게 됐다. 중국이란 ‘공룡’을 앞에 두고도 서로 치고받느라 정신없는 한·일관계의 현실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한국과 중국을 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생각은 일본 재계 관계자가 들려준 2013년 에피소드에서 드러난다. 그해 여름 지인들과의 골프 라운딩 때 얘기다. 동반자들은 아베 총리에게 “대국적 관점에서 한국이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 규모 격차가 더 커지면 동아시아는 중국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안고, 미국이 뒤에서 백업하는 구조로 가야 중국을 막는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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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베 총리는 “조언은 고맙다”면서도 이런 취지로 반박했다. “내 생각은 다르다. 한국은 신뢰 못 할 부분이 있다. 골포스트를 계속 바꾼다. 한번 합의해도 정권이 바뀌면 ‘국민이 원한다’면서 바꾼다. 중국은 한번 정하면 꽤 지켜준다. (1972년 국교정상화 때)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배상 요구를 한번 안 한다고 정했고, 국민이 항의하더라도 국가가 여론을 관리하며 약속을 지킨다. 그런 국가와의 협상이 쉽다….” 그러면서 “한국 대신 중국을 중시하면서 (외교를) 해나가려고 한다. 일본과 중국이 큰 방향을 정하고 한국은 따라오고 싶으면 오면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미 6년 전 아베 총리는 한국을 ‘골포스트 옮기는 나라’로 낙인찍었다. 국민 여론이 철저히 통제되는 중국을 ‘더 좋은 파트너’로 평가하며 ‘대국끼리의 담판’을 강조했다. 2015년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흐지부지되고, 대법원 징용 판결까지 나오면서 그의 생각은 더 굳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최근 한국 대신 중국에만 공을 들인다.

하지만 중국의 민낯이 생생히 드러난 홍콩 시위 앞에서도 아베 총리는 태연할 수 있을까. 중국이 지역 헤게모니를 완전 장악한 뒤에도 일본을 지금처럼 대접해줄까.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 외교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 한·미·일 공조를 통한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이해했다면 한·일관계를 이 지경까지 내몰지 않았을 것이다. 참혹한 홍콩 사태 앞에서 두 정상이 정신을 번쩍 차렸으면 한다.

서승욱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