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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문화원에서 유럽에 한국문화 전파하는 전진기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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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개관하는 프랑스 파리 코리아센터 전경.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에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허브 역할을 할 예정이다. [사진 이은주]

21일 개관하는 프랑스 파리 코리아센터 전경. 프랑스를 넘어서 유럽에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허브 역할을 할 예정이다. [사진 이은주]

시작은 '지하방'이었다. 1980년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은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 인근 아파트의 반지하와 지하 1층 창고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아주 자랑스럽게 내세울 번듯한 공간은 아니었어도 당시 돈으로 150만 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들여 입주한 귀한 집이었다.

거세지는 한류..."한국문화원이 달라졌다" #39년 만에 5배 규모로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관광공사,콘텐츠진흥원과 '코리아센터'로 #"유럽에 한국문화원 허브 역할 할 것"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공간엔 아쉬운 게 늘어만 갔다. 찾아오는 이들이 갈수록 급격히 느는 데 반해 공간은 협소했고, 심지어 상수도 배관이 터지는 바람에 지하가 물에 잠기는 침수 사고를 겪기도 했다. 누전·누수 사고를 심심찮게 겪으면서도 예산과 부지 선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이사는 쉽지 않았다. 39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감격 속에 문 연 파리 코리아센터

파리 코리아센터 개관 축하하기 위해 모인 국내외 인사들이 개관 특별전시 '때깔'전을 보고 있다. 오른쪽은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오른쪽). [사진 문화체육부]

파리 코리아센터 개관 축하하기 위해 모인 국내외 인사들이 개관 특별전시 '때깔'전을 보고 있다. 오른쪽은 박양우 문화체육부 장관(오른쪽). [사진 문화체육부]

파리 코리아센터 개관 특별전 '때깔' 전시장 현장. [사진 문화체육부]

파리 코리아센터 개관 특별전 '때깔' 전시장 현장. [사진 문화체육부]

20일(현지시간) 저녁 6시. 파리 미로메닐(Miromesnil)역에서 1분 거리에 있는 한 건물 밖에 마치 보란 듯이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개관 39년 만에 5배에 달하는 규모로 확장·이전한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의 새로운 보금자리 '파리 코리아센터'였다. 이날 이곳에선 공식 개원을 하루 앞두고 이를 축하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새로 마련된 넓은 전시 공간에선 한국의 전통 색을 주제로 한국민속박물관과 연계해 준비한 '때깔'특별전이 열렸고, 관람객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에선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축하 연주가 열렸다. 거센 한류 바람의 힘으로 지하방 시절과 결별하고 유럽에서 한층 달라진 한국문화의 위상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빛의 화가' 방혜자(82) 재불 작가는 "제가 파리에 온 지 60년이 다 돼 간다. 좁은 곳에 있던 문화원이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곳으로 옮겨온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우리나라의 힘이 빛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이곳에서 우리 아름다운 전통 예술을 많이 소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플뢰르 펠르렝 전 프랑스 문화장관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의 이전 계획을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왔는데 오늘 직접 와서 아름다운 공간을 보니 정말 반갑고 놀랍다"면서 "이곳에서 요리 교실과 영화제 등 젊은 세대를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프랑스 사람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개관 39년 만에 공간을 넓혀 이전해 개관한 파리 코리아센ㅌ. [사진 파리 코리아센터]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개관 39년 만에 공간을 넓혀 이전해 개관한 파리 코리아센ㅌ. [사진 파리 코리아센터]

전해웅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32년을 근무했다. [사진 문화체육부]

전해웅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32년을 근무했다. [사진 문화체육부]

유럽의 한류 전초기지로

[사진 문화체육부]

[사진 문화체육부]

이번 개관으로 파리 코리아센터는 바로 최근까지만 해도 세계 32개 한국문화원 중 거의 꼴찌에 가까웠던 31번째 규모(753㎡)에서 지금은 4번째로 큰 규모(3756㎡)로 우뚝 섰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건물에 한국관광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함께 들어서 LA, 상하이, 도쿄, 베이징에 이어 세계 다섯 번째 코리아센터이자 유럽 최초의 코리아센터가 됐다.

2016년 건물을 매입해 2년간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데 들인 예산은 총 839억원. 드라마와 영화에 이어 K팝 열풍이 거세게 부는 시점에 드디어 유럽에 한국문화를 전파하는 전진 기지가 마련된 셈이다.

개원식에 참석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파리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여서 런던에 있던 한국콘텐츠진흥원도 이곳으로 옮겼다"며 "세 기관이 한 공간에서 협력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어 "한류를 수출과 제조업 등과 연계하기 위해 다른 부처와 협업하는 컨트롤타워인 '한류추진단'을 연내에 문체부 내에 발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2년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근무하고 지난 7월 문화원장으로 부임한 전해웅 주한프랑스 문화원장의 감회도 남달랐다. 전 원장은 "대학 때 프랑스 문화원에서 영화를 보며 프랑스 문화에 가까워진 경험이 있는데, 지금은 반대로 한국에 대해 배우고 싶어 찾아오는 해외 젊은이들에게 프로그램을 어떻게 제공할까 고민하는 입장이 됐다"며 "파리의 문화원은 프랑스만의 문화원이 아니라 유럽 전체 문화원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전 원장은 이어 "이곳은 주변에 공유 오피스를 포함해 다양한 기업이 들어선 상업 지구여서 직장인들을 위한 런치 콘서트 등의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함께 둥지 튼 관광공사와 콘텐츠진흥원과 더불어 문화원이 한국문화 전파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열린 개원식에는 비베트 로페즈 프랑스 상원의원, 조아킴 손 포르제 하원의원을 비롯해 소피 마카리우 기메박물관장, 재불작가 이배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코리아센터의 새 출발을 축하했다.

K팝 빠진 프랑스 젊은이들 

 1900년 파리박람회 당시 프랑스 잡지 '프티 주르날'이 한국관을 묘사한 삽화.[사진 문화체육관광부]

1900년 파리박람회 당시 프랑스 잡지 '프티 주르날'이 한국관을 묘사한 삽화.[사진 문화체육관광부]

20일 파리 코리아센터 개관행사에 공연을 선보이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K팝 커버 댄스팀의 줄리아 지다(왼쪽)와 윌리엄 클라이드. [사진 문화체육부]

20일 파리 코리아센터 개관행사에 공연을 선보이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K팝 커버 댄스팀의 줄리아 지다(왼쪽)와 윌리엄 클라이드. [사진 문화체육부]

각기 다른 이유로 K팝에 빠져 자발적으로 한국문화 '덕후'들이 된 프랑스 청년들도 이날 개관 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무대에서 카라 '스텝' 등을 공연하기 위해 코리아센터를 찾은 케빈 프레이서(27)는 "지금까지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접했지만 문화원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이 한국 문화에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무대에 선 댄스팀 '핑크 클라우드' 멤버인 줄리아 지다(22)와 윌리엄 클라이드(21)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각각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한 학구파이지만, 트와이스·NCT·수퍼엠 등의 댄스를 소화하며 '과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엔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지만 한국 음식과 한국 IT 문화에도 관심이 커졌다"며 "코리아센터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식체험관, 공연장, 도서관까지…

20일 코리아센터 개관 행사에서 축하 연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20일 코리아센터 개관 행사에서 축하 연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파리 코리아센터는 가운데 중정을 두고 18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여기에 다목적 공연장(118석), 대규모 전시실(500㎡), 도서관(345㎡), 강의실(185㎡) 등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췄다.

전 원장은 새로 개관한 코리아센터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K팝 등에 매료된 젊은이들을 위한 자연스러운 생태계 조성"을 꼽았다. "여기 젊은이들의 한국어 배우기에 대한 열의도 뜨겁고, 한식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또 한국을 주제로 활동하는 해외 유튜버들의 활동도 늘고 있다"면서 "이들 '디지털 대사'로 임명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협업과 지원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2월까지 이곳에선 웹툰 전시와 애니메이션 상영, VR(가상현실) 한국문화체험존, 현지 한류애호가협회 '봉주르 꼬레'와 함께 여는 'K드라마 파티', 한식 아틀리에, IT(정보통신) 컨퍼런스 등 20여 개의 행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오는 12월 8일 파리 공연장 팔레데콩그레에서는 국립무용단의 개원 축하 공연 '묵향'도 공연된다.

내년에 개관 40주년을 맞는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은 이미 내년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런던문화원과 협업하는 DMZ(비무장지대) 전시를 비롯해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젊은예술가협회 '아작' 그룹전 등도 연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관광공사가 공동 주최하는 축제 '테이스트 코리아(Taste Korea)' 의 내년 주제는 '궁'으로 다양한 한국 드라마와 영화, 패션쇼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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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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